산다는 것 자체가 “감사”
아내는 “배도 아프지 않고 딸을 얻어 기쁘다“고 했습니다. 서른 넘은 큰 아들이 제 짝을 데려오던 날부터 모든 일이 감사하고 즐겁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하기야 아들만 둘 낳아 억척빼기들과 30여년을 지지고 볶으며 억척을 떨었으니 환하게 다가서는 ‘며늘아기‘의 웃음에 그만 몸과 마음이 녹아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감사하다고 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은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서건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생기는 마음의 양식인 것입니다. 처지를 바꾸어 되돌아보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삶이 고되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산다는 자체가 기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거리엔 눈바람이 몰아쳐 삭막강산(朔漠江山)이어도 거피 한잔을 나눌 수 있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감사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합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요.
한해의 저물녘, 지나온 1년을 되돌아보는 마음도 이러합니다. 회한(悔恨)을 버리고 욕심의 한 자락을 걷어낼 수만 있다면 삼백예순날 순간순간이 모두 ‘감사의 빛’으로 일어설 것입니다.
사랑은 마음으로부터
‘감사라는 말만 들어도 / 마음엔 해가 뜨고 /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 하루 내내 / 한 달 내내 / 그리고 일 년 내내 / 감사하며 살았지만 / 아직도 감사는 / 끝나지 않은 기도의 / 시작일 뿐입니다 / 받은 은혜 받은 사랑 / 잊지 않고 살도록 / 도와주십시오 / 베푼 관심 베푼 사랑도 / 돌아보면 이기심 투성이라 /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 다시 오는 새해에는 / 더 많이 감사해서 / 후회 없기를 / 간절히 기도 합니다 / 또한 / 감사의 기쁨을 감사 드립니다’
이해인 수녀가 쓴 ‘감사의 기도’를 찾아 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의 말에는 따뜻하고 포근한 웃음이 알알이 박혀 있습니다. 보석처럼 빛나는 사랑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누구로부터 든, 어떤 식으로 든, 사랑과 은혜를 입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낼 뿐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갚을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이지요.
사랑은 물질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마음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 거름을 주고 수확을 해서 나누는 과일의 향기나 다름없습니다. ‘마음의 향기’, 그것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나눠야 할 마음의 향기
이제 지난 1년 우리에게 ‘마음의 향기’를 나누어 주었던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 차례입니다.
나에게 잘했던 이들에게는 잘했던 일 이상으로 감사하고 나를 서운하게 했던 사람에게는 그 서운함으로 내가 좀 더 성숙했음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절망의 벼랑위에서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었던 일에 감사하고 고통을 통해 인내를 배울 수 있었던 일에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가난으로 겸손과 검소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음에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지난 1년은 눈인사라도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았습니다. 존경과 의로 맺어진 의형과 의제, 신뢰를 쌓게 해준 친구가 있음으로 해서 당당 할 수 있었습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매일 매일을 살갑게 맞아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아, 그리고 나를 온전히 의탁할 수 있는 신앙을 가질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지금의 처지를 감사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이라고 합니다. 지난 1년 힘들게 했던 최악의 상황도 더 건강한 미래를 예비하는 성장통(成長痛)으로 여길 수 있다면 새로운 기쁨이겠습니다.
영국 속담에 ‘감사는 자신의 평화를 위해 미래를 살찌게 하는 덕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평화와 건강한 미래를 위해 오늘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냅시다. 2009년은 감사했습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