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시오 벗님네들, 나 한라산도 이제 한목소리를 낼 때가 된 것 같소. 한동안 잠잠하던 케이블카설치문제가 곧 결정이 난다는 말을 듣고 왈칵 분노가 치솟는 구려. 그래서 착잡한 심정을 가눌 길 없어 큰맘 먹고 쉰 목을 가다듬었소. 이 문제가 어제 오늘에야 불거져 나온 일이 아님은 나 한라산도 잘 알고 있소. 그러기에 이제 와서 한 목소리를 내려함이오.
여보시오 벗님네들, 어찌하여 이 문제가 섬 안에서 거론되다가 환경부에서 결판이 나게 된 게요. 내가 큰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오. 왜, 환경부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 아리송하니 하는 말이오. 나 한라산이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것은 여러 벗님네가 잘 아는 일 아니오. 그게 다 한라산이 있는 그대로를 보고 지정한 게 아니겠소.
나 한라산에 케이블카설치문제는 오래 전부터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튀어나와 내 심기를 건드렸소. 내 정수리에 탑을 세우고 내 정강이를 깔아뭉개야 한라산이 보호된다는 큰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오. 여러 벗님네들도 한라산가슴팍에 쇠말뚝을 박고 내 정수리에 탑을 세워야 한라산이 살아난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이오.
그 때마다 한라산 보호차원에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소. 한라산케이블카설치문제, 보존과 개발의 양면성, 그게 한라산보호차원이라고…. 말이야 그럴 듯 하오만, 그것도 생태계 보전을 내세우고 있으니 소가 웃을 일이오.
외국의 예를 들어 케이블카설치에 대한 타당성을 내세우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소. 국내에도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는 산이 있다는 말도 듣고는 있소만 산도 산 나름일 것이오. 한 예로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내장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는 것은 나도 잘 아오. 내장산은 국립공원으로 내장사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고 단풍이 일경이오.
그러나 산으로 치자면 나 한라산엔 비할 바가 못 되는 새끼 산이오. 높이도 한라산자락에 산재하는 기생화산인 어느 오름만한 763미터에 불과해요. 내장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됐다고 해서 한라산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논리는 타당성이 희박해요. 케이블카설치문제가 그리도 화급을 다투는 문제인지, 서두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는 느낌이 들어 내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오.
한라산케이블카설치문제를 왜, 그리 급하게 서두는 것인지, 제주도에는 화급을 다투는 일들이 한 둘이 아닐 텐데…. 케이블카설치가 무슨 화급을 다툴 문제라고….
그나저나 케이블카설치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나 한라산은 심한 조급증을 앓기 시작했소. 이제 곧 내 정수리에 탑을 세우고 내 가슴팍에 쇠말뚝을 박는 일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오래 전부터 멍울져 있던 가슴앓이가 도지기 시작한 것이오.
그래서 백방으로 궁리를 해 보았소.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 일 아니오. 얼른 묘안이 떠오릅디다. 그게 내 수하에 있는 368개의 오름 신과 ‘물장오리’에 빠져 죽은 ‘설문대할망’ 신령의 힘을 빌려 한풀이 굿판을 벌리려는 것이오. ‘둥 둥’ 북을 치고 꽹과리를 울려 내 가슴팍에 쇠말뚝을 박고 내 정수리에 탑을 세우려는 악귀들을 물리치려 함이오.
보존을 위한 개발이라고 허울 좋게 치장한 악귀들은 368개의 오름 신과 ‘설문대할망’ 신령이 펼치는 한마당 굿판에 맥을 못 추고 물러가게 될 것이오. 나 한라산을 사랑하는 벗님네들아, 신명나게 굿판을 벌리는 날 굿 구경이나 오시오. 망망대해에서 몰아쳐오는 거센 칼바람을 맞아도 나 한라산은 지금 그대로가 좋소. 수많은 등산객의 내 정강이를 밟고 지나고 내 가슴팍이 벗겨져 하얀 속살이 드러나도 나 한라산은 그 아픔을 참고 견딜 것이오. 여보시오 벗님네들 나를 지켜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