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천
산지천
  • 정흥남 기자
  • 승인 2004.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지천은 과거 제주시민의 젖줄이었다.
하류인 산지포구에서 고기를 낚는 모습이 아름다워 산포조어(山浦釣漁)라 하여 영주10경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탐라순력도에는 건포배은(巾浦排恩)이라 하여 선비들이 북쪽을 향해 배례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산지포구는 제주도민들이 과거 육지로 가는 외길 통로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도민과 육지인들의 왕래가 잦아 한때 제주상권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항공운송이 발달하기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산지천은 제주항과 더불어 제주관문으로 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과정에서 산지천은 복개됐으며 또 그 위에 많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그러나 옛 모습을 복원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뜻이 한데 모이면서 복개부지에 들어섰던 많은 건물들은 우여곡절 끝에 모두 철거됐다.

이후 1996년도에 들어서면서 산지천을 문화와 역사의 정취가 살아있는 옛 모습으로 되살리는 복개공사가 이뤄지기 시작했으며 제주시는 100억원 가까운 사업예산을 투입, 2002년 6월 맑은 물이 흐르는 현재의 산지천으로 복원했다.

▶이처럼 숱한 사연을 품은 산지천이 요즘 요동치고 있다.
산지천 복원과정을 둘러싼 숱한 의혹들이 그동안 간간히 제기되기도 했으나 그때 마다 흐지부지 된 채 시민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수억원대의 사업비가 투입돼 조성될 예정이었던 ‘음악분수’는 설계변경을 통해 수십억원 대의 사업으로 둔갑했다.
또 수십억원 사업비를 투입 조성된 산지천 복원의 ‘상징물’인 목재다리는 조성 2년만에 부식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지천 복원과정의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제주시의회가 산지천 복원 과정에서 빚어진 이 같은 의혹들을 규명하겠다면서 이른바 ‘산지천 조사특위’를 구성하고 내년 4월까지 활동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제주시의회는 1990년대에도 산지천 건물철거 과정에서 빚어진 건물가격 보상 등의 부분에서 의혹이 제기되자 ‘산지천 조사특위’를 구성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산지천은 철거 때에 그랬던 것처럼 복원 때에도 그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들 때문에 시의회 특위가 구성되는 ‘기이한 하천’이 된 셈이다.
시의회가 기왕에 조사특위를 구성한 만큼 그동안 빚어진 온갖 의혹들이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는 투명한 내용으로 밝혀져  더 이상 산지천에서 ‘의혹의 물결’이 일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