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목 같은 따뜻한 평화
목에 감기는 바람이 차갑다. 을씨년스런 날씨다. 몸이 달팽이처럼 옹송그려진다. 이런 날 밤엔 식구들과 도란도란 나누는 군밤이나 군고구마 한 봉지 생각이 간절하다. 아랫목 같은 따뜻한 평화가 그리운 것이다.
세밑, 따뜻하고 포근함이 그리워지는 때다. 가난하고 마음이 고단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인지 ‘딸랑 딸랑 구세군 자선냄비’ 손 종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자선(慈善)은 사랑의 시작이라 했다. 조건 없이 내가 가진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는 것이다.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자선의 미덕은 순수성에 있다.
자선은 베풀면서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자랑하지 않는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 모르게 하는 은밀성이 생명이다. 자선은 생색내기가 아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향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그 혼자서 성취해 낸 것은 아니다. 성취의 9할 이상은 그가 부대끼며 살았던 수많은 이웃이 있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알게 모르게 그들의 고통과 피와 땀과 눈물이 만들어준 결정체(結晶體)라 할 수 있다. 그는 다만 ‘영점 몇 %’의 노력을 했고 ‘영점 몇 %’의 운이 따랐을 뿐이었다. 그것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법칙이다.
그러기에 따져보면 자선은 내 것을 베푸는 것일 수가 없다. 나를 오늘까지 있게 한 가난한 이웃들에게 되 돌려주는 행사인 것이다. 무조건적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이것이 자선의 순수성이다.
베풀면 기쁨이 용솟음
자선은 기쁨과 행복의 엔돌핀이라 한다. 남모르게 베풀고 나면 기쁨이 솟아나고 행복하다.
록펠러는 암에 걸린 1년 시한부 인생이었다. 그가 일군 엄청난 부(富)도 허망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에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는 어머니의 권고에 따라 아낌없이 자선을 베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답답하던 가슴이 트였고 기쁨이 솟아올라 마냥 행복해 졌다고 했다. 결국 록펠러는 의사의 1년 시한부 인생 선고에도 그 후 40년이나 더 살았다. 록펠러의 자선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한 줄기 생명의 빛과 같은 메시지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세상을 마감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졌지만 세상 등질 때 두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해 볼 때인 것이다.
재산은 물질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진 몸과 마음, 시간, 재능 등 모든 것이 다 재산인 것이다.
그러기에 자선은 부를 일군 사람들만의 독점물일수는 없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여인이나 가난한 과부의 헌금처럼 가진 것 없어도 마음먹기에 따라 빛나는 자선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것이다. 자선은 빈부의 차나 남녀노소에 관계없는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징소리 같은 고사리 온정
아무리 그렇더라도 가진 자의 기부나 자선행위가 돋보이는 것은 탐욕을 끊어내는 그들의 결단과 용기와 사회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15일, 왕융창(王永慶) 대만 플라스틱 그룹 회장은 전 재산 약 68억달러(당시 환율로 8조9700억원)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는 자녀들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은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다. 내 전 재산을 기부해 사회복지에 기여하려 한다”고 했다. 홍콩 액션 스타 천룽(成龍)도 그랬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나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은행통장을 깨끗이 비우고 전 재산을 가족이 아니라 사회에 기부 하겠다”며 평생 모은 4000억원 규모의 재산을 내놓겠다고 했다. 작년 12월 2일자 외신 기록이다. 거액 재산 사회 기부자는 이 외에도 많다. 일반인들에게는 엄두도 못낼 일이지만 가진자들의 이런 기부 행위는 그래도 듣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기 충분하다. 가져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욕심을 부리는 ‘탐욕의 시대’를 울리는 징소리 같아서다. 그래서인지 꼬깃꼬깃 지폐 한 장을 구세군 자선냄비에 넣는 고사리 손길 사진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서는 겨울 날 아침이다. 이런 손길이 모여서 세상을 포근하게 감쌀 것이기 때문이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