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연시가 다가오면 보통사람들의 마음은 추위를 타는 모양이다. 이유는 날씨의 추운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나간 금년은 뭔가 알차게 지내지 못한 것만 같아서 후회스럽고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더 우리를 짓누른다.
그래도 한해를 결산하고 다음 해의 경영계획을 세워야한다. 그런데 국가나 기업이나 가정이나 개인들의 새해 계획을 보면 지난해 실적과 비교하는 것이 일색이다. 전해에 비해서 몇% 증가니, 신장이니 하는 말들이 중심을 이룬다. 물론 지난 것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이 있듯이 과거의 반성을 통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의 수치와 비교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과거의 연장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연장사고는 예외 없이 무사안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연장사고는 개인뿐 아니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낭비와 안일을 초례한다. 요즘 국회에서 정부예산 심의 과정만 봐도 항목별 전년대비 증감을 가지고 여야가 싸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의식의 근저에 깔린 시스템 아래서는 불요불급한 사업이라도 다음해 예산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 굳이 금년에 집행하는 비효율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것은 연말에 몰리는 공사착공 통계가 말해 주고 있다.
과거에 대한 부정(否定) 없이는 개인이나 정부도 개선 할 수가 없는 법이다. 조직이나 개인의 새해의 발전을 바란다면 모든 사물과 일을 대할 때 원점사고를 가지고 경영목표든 인생 목표든 새롭게 바라보아야 비로소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프로골퍼들이 슬럼프에 빠지면 골프채 잡는 법부터 새로 시작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 말은 내말이 아니고 일본의 자동차회사 혼다회장 후쿠이 다캐오의 말이다.
연말연시 길목에서 원점사고도 필요하지만, 과감히 포기하고 버릴 줄 아는 용기와 결단이 또 필요 하다.
케이블TV 방송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어느 나라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코코넛을 이용해 원숭이를 산채로 잡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였다. 코코넛 껍데기에 원숭이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서 속을 모두 긁어낸 다음, 그 속에 콩을 조금 집어넣고 끈을 연결해 말뚝에 단단히 매둔다. 이 코코넛을 발견한 원숭이는 냉큼 다가와 구멍 속으로 손을 넣어 콩을 한 움큼 집는다.
그때 숨어 있던 사람이 다가가면 원숭이는 손을 빼고 달아나려 기를 쓴다.
하지만 콩을 잔뜩 쥔 손을 빼내지 못해 결국 사람에게 잡히고 만다. 콩을 버리지 못한 대가가 이렇게 치명적일 수가 없다.
우리 인간들도 이 원숭이처럼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여 제때 포기 못해서 실패 할뿐 아니라, 살기는 살지만, 죽음의 길을 가면서 추잡하게 승리 한 자를 우리는 가끔 본다.
우리는 지금 세계적으로 매우 어렵다, 경제도 인심도 삭막하고 각박하다. 어려움만 목전에 둔 지금, 연말연시의 길목에서 결심하는 시간이다. 새해결심에는 원점해서 생각하자. 자신의 건강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버리는 데서 시작해보자. 부도. 명예도 권력도 다 던지어버리고 원점에서 생각하며 고행할 각오로 새해를 맞이하자, 안일(安逸)을 바라지 말자.
바닷 속의 조개는 주위가 조용하면 기어 나와 활동하다가도 시끄러우면 두꺼운 껍데기를 꼭 닫고 움직이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안일한 실패이다. 혼자만 편안하게 지내자는 것이다. 미래에는 무겁고 두꺼운 껍데기, 즉 이기적인 과욕을 과감히 벗어 던지자, 상처를 마다하지 말자, 상처 난 조개가 진주를 만든다. 상처의 아픔이 원점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불쌍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사람, 젊어서 배우자를 잃은 사람, 그리고 뜻밖에도 소년 급제한 사람이라고 한다. 일찍 과거급제한 사람을 왜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일까? 궤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일찍 한 성공은 상처 난 조개의 아픔을 모르는 성공이다.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일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레미제라블>에서 평생 장발장을 뒤쫓은 자베르경감은 그는 법률 프로페셔널이지만 ‘나는 법률의 노예였다.’고 독백하며 센강에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상처 난 조개의 아픔을 모르는 법률가는 법률의 노예나 기계에 불과 한 것이다. 그래서 깊은 인성(compassion)의 소유자는 상처 난 조개에서 나온다. 진주는 시련과 실패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