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12월 26일 1,000회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되는 뮤지컬 ‘명성황후’.
기울기 시작한 조선 말기의 답답하고도 처참한 그러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뮤지컬을 보면서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역사적인 상황은 청·일·러·미 등 주변 강대국의 개방 압력과 탐욕, 이에 맞선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명성황후의 명철한 외교처신이 상충되어 그야말로 대한제국의 앞날은 오리무중,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모두 2막 25장으로 되어 있는 뮤지컬 명성황후는 황후역 이태원의 풍부한 성량과 파워풀한 몸짓, 고종역 박완의 차분하면서도 분명한 언어전달, 대원군의 중후한 연기, 각국의 외교사절, 군사, 궁녀 등 모든 부분에서 풍성한 공연이었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선택, 대동아의 길, 일본의 번성이 대동아의 번영이며, 힘이 곧 정의, 힘이 곧 진리라는 미명아래 시작되는 25장까지의 스토리 속에 묻어 있는 역사는 수치와 굴욕과 나약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저미며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은 무과시험에서 장원급제하여 시위별감으로 목숨걸고 왕실을 지켰던 홍계훈의 장렬하고도 처절한 애국충정이었다.
이 뿐 아니다. 여우사냥이라는 작전아래 명성황후를 시해하기 위해 궁궐에 뛰어든 일본낭인들의 칼날 앞에 자신의 목숨을 초개 같이 여기고 스스로 황후라고 속이며 앞을 가로막아 한 떨기 꽃으로 지고 만 궁녀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죽음은 정말 궁인의 신분을 뛰어넘어 역사에 새겨진 이름 없는 애국지사라는 생각이 든다.
1885년 10월 8일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낭인(살인집단)들에 의해 경복궁 옥호루(또는 마당)에서 명성황후를 난자시해하고 불태워버렸으니 이 비극의 아픔은 뮤지컬이 끝나도 가슴에 박혀 있음을 숨길 수 없다.
“알 수 없어라, 하늘의 뜻이여, 조선에 드리운 천명이여, 한스러워라, 조정의 세월 부질없는 다툼들, 바위에 부서지더라도 폭포는 떨어져야하고 죽음이 기다려도 가야할 길이 있는 법, 이 나라 지킬 수 있다면 이 몸 제가 된들 어떠리, 백성들아 일어나라, 이천만 신민 대대로 이어 살아 가야할 땅??
‘조선의 백성이여 일어나라’라는 마지막장에서의 이태원의 힘찬 절규에 관객 모두 숨죽이며 벅찬 감동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관람료가 아깝지 않은 뮤지컬 명성황후는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의 부질없는 갈등과 정치싸움에 다시 절규하고 있는가.
송 중 용
제주특별자치도 축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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