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안익태의 애국가
[세평시평] 안익태의 애국가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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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됐다. 민족문제연구소 설립으로부터 18년 만이다. 사전에 등재된 인물은 모두 4389명. 이로써 광복 64년 만에 민간 차원의 친일파 청산 작업이 마침표를 찍었다. 같은 시기에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도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활동을 종료했다.

1949년 중단된 제헌국회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의 작업을 국가가 이어받아 이번 마침표를 찍었다. 그렇다면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마련한 친일의 기준은 무엇일까. 연구소는 사전의 수록 대상자를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가 포함되면서 애국가 교체 논란이 일고 있다. 작사가는 윤치호ㆍ안창호ㆍ민영환 등이라는 설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안익태는 한국의 국가가 스코틀랜드 민요〈이별의 노래(A__d lang syne)〉에 가사를 붙여 불려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1936년 애국가를 작곡했으며, 1948년의 정부 수립과 함께 국가가 되었다. 안익태가 명백한 친일인사라면 그가 작곡한 애국가를 부르지 말아야 한다. 친일작곡가가 만든 애국가를 부른다면 우리 모두 친일파가 되는 것은 자명하다. 친일 기미가요 냄새가 나는 애국가를 쓰레기통에 쳐 넣어 버리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독립운동가, 아리랑 등 현시대 맞게 편곡해 다시 태어나는 국가를 만들어보자는 사람도 있다. 안익태는 1938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에 체류하던 기간에 일본의 천황을 위한 ‘일본 축전 음악’ 연주회에서 공인 지휘자로 추천받았다. 일본과 나치의 고위 간부로 구성된 ‘독-일회’는 당시 수많은 연주회를 열면서 그의 지휘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안익태가 독일에서 일본의 지휘자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나치와 일본 쪽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한 공적인 행위이다.

특히 1942년 ‘독-일회’가 제작한 홍보용 팸플릿에는 독일ㆍ이탈리아ㆍ일본 3국 동맹 체결을 기념하는 연주회 때 그가 일본의 대표 지휘자로 참가한 사진이 실려 있다. 만주국 건국을 기념한 <만주환상곡>을 작곡ㆍ지휘하고 만주국과 이탈리아의 국교 수립 기념음악회 지휘를 맡는 등 적극적인 친일 행보에 앞장섰다. 1942년 독일-이탈리아-일본 삼국동맹이 결성된 뒤의 친일 행적이 뚜렷하며, 파시즘을 찬양한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도 여럿이다.

<친일인명사전> 군 부문에는 그의 형인 안익조도 포함되어 있다. 안익태의 애국가 이전에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국가가 있었다. 1934년 프란체 에케르크가 작곡한 대한제국 국가나 독립군 진영에서 국가란 이름으로 불리던 독립가 등 애국가가 많다. 그러다가 해방 전후로 해서 안익태의 애국가가 불려졌다. 따라서 안익태의 애국가만 유일한 국가로 불려 져야 하는 건 아니다. 애국가는 시대마다 그 시대를 반영해왔다.

이제는 21세기를 지향하고 민족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애국가가 나와야 한다. 누군가가 새롭게 작곡해야 한다. 기존 애국가의 가사는 살리고 작곡만 새로 하거나, 시대정신을 담아 가사까지 다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도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에 안익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니 한편으로 아이러니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언론인 장지연, 장면 전 국무총리, 음악가 홍난파, 안익태, 무용가 최승희 등도 제외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에 협력한 행위를 한 자’를 포괄적으로 친일행위자로 규정한 반면, 진상규명위는 특별법에 따라 ‘일제에 협력해 우리 민족에 해를 끼친 행위’라는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아픈 역사를 들춰내 기록하는 것은 우리 내부의 친일을 기억함으로써 일본-가해자, 조선-피해자라는 단순도식을 넘어 제국주의 자체에 대한 반성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후대의 기념사업 대상이 될 정도의 인물이라면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어야 한다. 책임 있는 지도층이라면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 영광만 가져가고 과오는 가져가지 않겠다면 그것은 기회주의다. 친일청산에 대한 비판은 친일을 옹호하고 항일을 흠집내는 일이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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