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총파업을 강행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너무나 미미했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총파업 참석은 전체의 2%에 불과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국민적 비난시각과 자체의 부담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은 파업을 시도했을까. 무엇때문일까.
‘철밥통’이라는 수식어처럼 생계 등 생활선상에서 노숙자 전락이라는 부담을 전혀 갖지 않아도 될 이들이 왜 이런 막가파식 벼랑 끝을 달려갔을까.
▶혹자는 정치적 논리때문이란다. 똑 같은 공무원 신분의 입장에서 ‘복종의 의무’로 묶여진 하위직 계층에 대한 대변과 또 하나의 근로자 신분에서의 공무원 명분찾기가 그것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이는 “웃기지 말라. 그 철밥통 나에게 달라”고 얘기한다. 배부른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월급때면 단 한푼 떼이는 것 없고 민원인 찾아오면 법과 규정을 제시하는 그들이 왜 위법을 하는가가 주된 요지다.
▶문제는 우리 주변의 친구이자 형들에 대한 얘기다. 지금 제주지역에서는 5명의 강성노조원(?)들이 자신들이 다녔던 직장에서, 자신들이 했던 업무를 하지 못하게 됐다. 직위해제된 것이다.
이들을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까. 동정의 눈으로, 아니면 “그것참 잘 걸렸다”식의 비난의 시각으로 볼 것인가.
어떤 시각이 옳은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시기와 명분이라는 기준으로 따진다면 그들은 분명 ‘희생양’이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일상에서 이탈했을까. 자신을 위해서일까. 아니라고 봐진다. 그들은 ‘모두’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자신이 쓰고 있는 직책상 책임을 졌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가족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잘했다고 느낄까. 아니면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왜 당신만 그러느냐”고 질타할 것일까.
분명한 것은 앞으로의 삶이 고단할 것이라는 점이다. 예상했던 아니던간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의 생활은 지금까지의 삶과 전혀 다른 변수로 종전의 틀이 깨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그들의 운명은 정부의 강경방침과 맞물려 오는 19일 있을 제주도의 중징계가 예상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슴에 하나의 화살을 맞은 셈이다.
화살의 상처가 곪을지, 치유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