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개를 기르는 것은 도적을 막기 위해서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1991년 우여곡절 끝에 제주도개발특별법을 갖게 된 것은 전국적ㆍ획일적 기준에서 벗어나 제주환경에 특유한 제주개발의 모델을 정립하여 풍요로운 제주건설의 법적 수단으로 쓰고자 함에 있었다.
또한 2002년에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선택한 것은, 무한경쟁의 열린 세상에 경제흐름을 가로막는 모든 법적 장애를 걷어내고 관광, 교육, 환경 등 주요 분야에 제주의 잠재 역량을 극대화하여 선진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국제자유도시를 추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특별법의 입법과정에서 타 지역의 질시(疾視)와 중앙부처의 견제를 받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2002년 11월 ‘경제특구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이 제정되어 2003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고, 이 법률마저 부족한지 정부와 여당은 올해 정기국회에서 ‘민간복합도시개발특별법(기업도시특별법)’을 의결하여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입법예고를 한 상태다.
인천ㆍ부산ㆍ광양 등의 경제특구가 제주국제자유도시에 비해 투자유치에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고, 위 기업도시특별법이 예정대로 제정ㆍ시행된다면 2005년부터 기업에 토지수용권을 부여하고 각종 세금감면혜택과 외국인학교설립 등을 허용함으로써 지식기반 및 관광레저 형태의 기업도시가 건설될 것이고, 투자의 큰 손들은 제주국제자유도시보다 기업도시를 선호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요즘 도민사회에서는 우리는 각종 개발특별법의 실험장이 되었을 뿐이고 그 과실은 다른 지역 대도시지역이 따먹고 있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박정희정권’ 시절을 제외하고, 2개의 특별법이 제정ㆍ시행되는 10여 년의 기간 동안에 중앙정부가 도세 1%의 수준을 뛰어넘는 특별한 지원을 한 사례가 없고, 게다가 2개의 특별법이 특별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후속조치를 챙겨주지 않고 오히려 이 특별법 위의 특별법을 만들어 투자자들을 싹 쓸어 가고 있다.
한마디로 약주고 병주는 꼴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제주사람들은 나무(특별법)에 올라가 고기를 잡고자 한 셈이 되었다. 당초부터 성공할 수 없는 고기잡이에 나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바다제비는 몸집이 큰 도요새과에 속하는 해조(海鳥)이다. 유럽의 뱃사람들에게는 폭풍우를 알리는 새로 전해지고 있으나 오늘날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 ‘사회적인 대변동’의 비유적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2개의 특별법 환상에 젖었다가 낭패를 보았음에도, 제주도정은 2개의 특별법에 따라 또 다시 특별법 만들기에 나서 폭풍전야를 예고하고 있다. (가칭) ‘제주특별자치도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 이 그것이다. 21세기 제주비전인 국제자유도시 건설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지역 특성을 반영한 경쟁력 있는 행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이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주특별자치법의 입법배경ㆍ필요성을 살리려면 규모의 경제(경제성장)에 역점을 둔 광역행정체제 내지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채택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법체계는 헌법상 보장된 지방자치제도의 본질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및 지방분권전략에 모순ㆍ저촉된다
제주특별자치가 지방행정의 민주화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면, 우리 제주는 내년부터 중앙정부의 로드맵에 따라 시범자치제를 시행하면 그만이다. 구태여 제주에 특유한 특별한 행정법 체계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제주도정의 깊은 뜻은 지방분권화 흐름인 1단계의 민주화를 희생해서라도 2단계의 효율성과 3단계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행정계층구조의 개혁, 즉 기초자치단체의 정치적 소멸에 집중된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제주국제자유도시와 제주특별자치도는 함수관계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느 쪽을 상수(常數)로 하고 다른 쪽을 변수(變數)로 할 것인지는 최종적으로 도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제주국제자유도시의 근본 문제는 경제(투자)의 문제이지 자치분권(민주화)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기초분권의 광역집중화를 통해 다소간 지역경제에 순(順)기능할 수 있겠지만, 기초자치단체의 정치적 사망에 따른 민주주의 희생이 훨씬 크다고 본다.
게다가 제주특별자치도 기본구상에 나타난 조례를 법률의 효력과 동일시하여 조례로써 과세의무를 부과하고, 또는 재산권을 제약하거나 형벌권을 부과하겠다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적 발상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주현실에 입각한 철저한 자기성찰과 실용성이 뒤떨어진 미래담론을 솎아내는 일이다.
논설위원 김 승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