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질투(ressentiment)의 사회, 제주도
[세평시평] 질투(ressentiment)의 사회, 제주도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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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지방선거에 앞서 발생한 단체장후보로 거론되는 자에 대한 비방 유인물 우송 사건이 있었으나 사건은 미궁으로 끝났다.

이런 사건은 전국에서 최초 사건이라고 한다. 우리 제주도는 전국에서 제일 순박하고 도둑과 거지와 대문이 없는 삼무의 고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국에서 제1순위의 질투와 노여움이 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서 뜻있는 도민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슬프게 하는 이유는, 시도별 공무원의 청렴도 순위가 그렇고, 단체장 후보 비방 유인물편지사건이 그렇고, 지방정부정책에 대한 도민갈등 등등이 그렇다.

이런 일련의 변화들의 질투와 노여움(ressentiment)사회의 전 단계다.

‘르상티망(ressentiment)'은 철학자 니체의 유명한 말로 약자의 질투와 노여움, 그리고 패배자의 시기심을 가리킨다. 승자를 마음속으로는 인정치 않는 원망(怨望)의 듯도 담고 있다.

물리적으로는 패배 했지만 정신적, 인간적으로는 자신의 더 우월하다는 약자의 자기 정당화가 르상티망(ressentiment)의 밑바탕에 갈려 있다는 것이다. 냉소적이기는 하지만 세계 생명철학의 거성(巨星)인 니체의 이 화두에는 인간성그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배가고픈 것보다 배가 아픈 게 더 참기 어려운’ 우리들의 마음속의 비밀을 건드리는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으로 조금씩 가진 이런 마음의 악마성이 제어되지 않을 때 그것은 사회의 성격과 삶의 문화에 문제로 나타 날 수뿐이 없을 것이다. 너무 오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밝은 사회에 지장이 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제주지역은 인구 , GDP 등등의 전국의 1%다. 1%의 아주 작은 공동체에서 그 무엇이 질투심과 시기심을 조장하는가? 시기심과 질투심을 억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니체의 철학에서도 정립하지 못한 생의 명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질투심과 시기심이 한 인격의 실상을 보여 주는 것처럼 르상티망(ressentiment)의 사회적 만연은 한 사회의 문화시민 격(格)의 실체를 폭로한다.

잘나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고, 못 먹는 밥에 재 뿌리는‘ 게 개인의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문제로 확대 된다.

이세상은 누군가가 위선과 시기심으로 거짓말을 하면 이 세상이라는 호수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 내린 것처럼 그 주변은 혼탁해 버린다.

그것이 본래의 맑은 물을 찾을 때까지 순화 과정은 그 거짓말 할 때 소요되는 것보다 만 배쯤의 순결한 에너지가 필요할 수 있다.

이때 순결한 에너지가 힘이 버거울 때면 갈등과 불신이 무한정으로 재생산되며 인간의 오감만 충족시키는 문화가 없는 원망과 투쟁만 있는 앵 그리(angry)사회가 된다는 것은 사회과학의 이론이다.

조금 세부적으로 부연하면 어떤 조직이나 사회에서는 좋은 자리 와 상위 직은 희소함으로 위로 올라 갈수록 경쟁이 치열한 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문제는 경쟁자를 끌어내리려는 권력게임이 무차별 적 해코지로 비화되는 데 있다. 이렇게 된다면 ‘만인이 만인에 대해 적이 되는’ 풍토가 조성된다.

어느 중앙지의 기사에 따르면 무기명 고발 고소 사건 중 20%만 기소 되고 나머지는 불기소나 기소 유예된다고 한다. 여기서 고소 고발의 80%는 배가 아파서 저지른 무고 성 고발이다. 사회를 혼탁 시키는 투서다.
물론 고소, 고발, 투서에는 순기능도 있다. 내부비리 고발은 부정부패를 막고 사회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또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가피한 저항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질투와 시기심, 원망의 만연은 전 도민이 항상 불만족 상태에 놓인 ‘앵그리 사회’로 고착시킨다.

‘사촌의 밭을 사면 배가 아프고, 털면 먼지 안 나는 놈 없는’ 인간의 보편적 그늘에다 지역적 르상티망이 가세한 우리제주는 나의 잘못된 생각인지 모르지만 과열한 상태인 것만은 사실이다. 민선지방 자치가 된 후가 더욱 그렇다.

질투심은 영웅을 죽이며, 원망의 문화는 원한의 자치를 부른다는 말이 있다. 헐뜯기와 원한이 판치는 풍토에서는 역사의 성과가 축척되지 않는다.

미래의 희망대신 과거의 허물을 들추는 삶은 왜소해지고 주민 통합의 길은 멀어만 진다. 그런 점에서 르상티망은 우리들의 마음속의 악의 축(axis of evil) 이다.

제어되지 못하는 르상티망은 마음의 평화를 파괴 할 뿐 아니라 세계중심으로 도약하겠다는 국제자유도시의 야무진 꿈도 꿈으로 끝난다는 생각으로 배 아픈 것을 이기고 배고픈 것부터 생각했으면 하는 가을 저녁이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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