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마일 휴전선을/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푸른 바다가 굽어보이는 산정에 다다라/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 땅 한 삽/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 땅 한 삽씩 떠서/합장을 지내는 꿈’ 문익환의 시 <꿈을 비는 마음>에서 그의 꿈은 더 이어져, ‘휴전선 원시림이/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그리고 우리 모두/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뛰노는 꿈’으로 발전한다. 그는 자신의 꿈을 두고 ‘어처구니 없’다고 말하지만, 그 꿈이 <잠꼬대 아닌 잠꼬대>로 나아가고, 그 `잠꼬대'에 따라 직접 평양을 방문한다. 그리고 그는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나가는' 시를 쓴 셈이다. 그의 `꿈'과 `잠꼬대'는 점차로 현실로 옮겨가는 것이 아닐까?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는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군사분계선에서부터 남북 양쪽의 완충지대이다. 바로 죽음의 지반 위에 세워진 평화의 가건물이다. 그 자체가 역사박물관이며 전쟁박물관이다. 그곳에서 죽음은 역사적 사실이고, 평화는 불확실한 미래이다. 반세기 전의 끔찍했던 내전의 소산이며, 적극적이며 항구적인 평화에 이르지 못한 어정쩡한 타협의 증거이다. `비무장지대'의 `비'(非)는 언제든지 떼어버릴 수 있는 혹과도 같은 것이다. 비무장지대 설정에 관한 토의는 1951년 7월 27일부터 시작되었으며, 수차에 걸친 논의 끝에 군사분계선은 쌍방 군대의 현 접촉선으로 하고, 남북으로 각각 2㎞씩 나비 4㎞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하는 것에 합의하였다. 그 뒤 1953년 7월 22일 군사분계선이 재확정되었고 이에 따라서 비무장지대가 설정되었다.
자연은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마저 보듬는다. 남과 북이 치열하게 피를 흘리며 죽어간 비무장지대 위에 자연은 고귀한 생명을 불어넣는다. 수 천여 종의 동식물이 사는 지상의 낙원이 된 곳. 자연의 경이로움과 전쟁의 상흔이 동시에 느껴져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곳, 슬픔의 땅. 그러나 반세기가 지나면서 생명과 평화를 상징하는 땅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곳에는 67종의 멸종위기종을 포함하여 2천7백여 종의 동·식물들이 살고 있다. 천연기념물 두루미와 희귀종 저어새, 왜가리 등 다양한 철새들의 월동지이면서, 동북아 토착희귀종인 고라니와 멸종위기종인 산양, 반달곰 등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인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원의 주요 유적들은 깊이가 있다. 지뢰의 위협이 곳곳에 서려있는 일반인들의 접근을 좀체 허용하지 않는 곳. 비무장지대나 북측에 있어 답사가 어려운 태봉국 도성, 평강 오리산, 한국전쟁 당시의 고지들, 그리고 중국군이 쌓은 ‘지하 만리장성’ 등을 멀리서라도 볼 수 있다. 임진강변을 따라 분포한 적석총은 “고구려 추모왕(주몽)의 태자 유리에게 ‘용납되지 않을까 두려워’ 어머니 소서노와 형 비류, 그리고 오간·마려 등 열 명의 신하들과 함께 남으로 내려와 백제를 세운 온조 세력의 흔적이 아닐까”라고 추정한다. 또 고대사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 온조 세력의 첫 도읍지로 임진강변의 육계토성도 만날 수 있다. 또 궁예의 태봉국 성터를 비롯한 수많은 역사 유적과 더불어 한국전쟁 등 우리의 근현대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숨진 수많은 병사들의 넋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정부는 2012년까지 비무장지대 일대를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도록 하기 위하여 생태조사를 벌었으며 또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하여 비무장지대를 국제적인 평화공원으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항용 불가능을 꿈꾸는 시인의 눈에 `비무장지대'의 `비'는 소극적이고 임시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항구적인 것으로 비친다. 시인 신동엽은 짐짓 술의 `장난'에 기대어 그런 꿈을 꾸어 본다.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이라는 시에서 그는 ‘폭 십리의/완충지대, 이른바 북쪽 권력도/남쪽 권력도 아니 미친다는/평화로운 논밭”이 남으로 서귀포 밖과 북으로 두만강 밖으로까지 팽창되는 꿈을 소개한다. ’꽃피는 반도는/남에서 북쪽 끝까지/완충지대,/그 모오든 쇠붙이는 말끔이 씻겨가고/사랑 뜨는 반도,/황금이삭 타작하는 순이네 마을 돌이네 마을마다/높이높이 중립의 분수는/나부끼데.’ 시인은 비록 그것을 ‘허망하게 우스운 꿈’이라 치부하지만, 그 안에 담긴 비원과 열망을 눈치채지 못할 독자는 아무도 없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