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여성들의 수다
[세평시평] 여성들의 수다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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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마지막 날 절물 휴양림 장생이 숲길에 갔다 왔다. 장생이 숲길을 걷는데 앞에 가는 중년여성들의 수다가 유난스러워서 뒤에 걷는 나는 자연스럽게 청취하게 되었다. 말투가 경상도 사투리다.

수다 내용은 남자들은 착한여자가 아니라 여우같은 여자를 왜 더 사랑할까? 하는 등, 이들은 남편을 포함한 모든 남성을 리더하고 사랑 받기위해서는 남자들에게 잡힐 듯 말듯이 애간장만 태우는 여우같은 여성이 더 합리적이란다.

이들은 뒤에 걷는 다른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며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열중했다. 다른 사람들은 무조건 떠드는 여성의 수다를 들으면 기분이 잡친다고 하지만, 나는 그 수다덕택에 가볍게 워킹을 할 수 있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수다’는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 또는 그런 말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쓸데없이’라는 말에서 알아챌 수 있듯, 수다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는 행위로 생각 할 수 있다. 또 이런 속담도 전해진다. ‘말 많은 집 장(醬)맛도 쓰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처럼 우리 사회에는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수다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지가 있다.

그러나 이번 연휴 TV추석특집프로그램 핵심 포인트는 여성들의 ‘수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같이 여성들의 수다는 일상적 현상이다. TV 라디오 인터넷은 물론 실내외 공간이나, 온라인 오프라인 어느 곳이든 수다 투성이다. 수다는 정말 쓸모없는 행위일까? 남성보다 여성이 더 수다스럽다는 말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을까?

독일 작가 클라우스 틸레도르만은 그의 저서 <수다의 매력, 전옥례역>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호기심, 상상, 질투, 시기, 권태, 명예욕, 얘기하기 좋아하는 성격이 뒤섞여 수다로 나타나며, 수다가 옮겨지는 과정에서 결점, 두려움, 자만, 소망 등을 타인에게 투사시킴과동시에 인간의 폭로욕구 발현이며, 시간 장소 나이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이뤄진다.’ 라고 한다.

또한 앞에서 말했던 이들 중년부인들의 말하는 여우같은 여자란 과연 어떤 여성모델일까? 우리들의 유교전통사회에서 말하는 현모양처 형은 아닐 것이다.

일반인들의 생각하는 여우같은 여성상은 남자가 전화하면 언제든 튀어나오는 착한여인들과 달리 자신을 남자보다 아주중요하게 여기는 똑똑한 여자들이다. 남자들의 전화를 해도 생활이 바쁘다며 애간장만 태우는 형의 여자이다.

그러나 남성중심의 세파에서,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 온기를 느끼는 사회를 위해서는 여우같은 여성은 너무나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추석 연휴에 우연히 인터넷 영화<체인질링>을 봤다. 클린트 이스트감독,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다. 유괴된 9살 된 아들을 찾으려는 어머니의 힘겨운 투쟁으로 전개된다.

이 주인공의 실종된 아들을 향한 슬픔과 그리움으로 적신 가녀린 몸짓 깊은 눈빛은, 남자들의 여성편견에 대한 강한 반응의 아름다움이었다. 이게 여우같은 여성 모델이다.

영화의 중반부, 아들을 찾았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한 걸음으로 달려간다.

담당 경찰은 조소 섞인 한마디를 내뱉는다. ‘여자들이란’ 이 대사 한마디가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담겨져 있다. 여기에 대응은 여우같은 여성이 아니면 안 된다.

내가 <체인질링>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은 단순히 이 영화 한편이 전달하는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인 ‘석양의 무법자’ ‘더티 해리’ 등등에 등장하는 여성은 보통 여우같은 강인성이 없고 사고능력이 순진한 성적대상으로써 여자가 많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남성중심의 영웅 상을 전복시키고 여성에게 자의식을 부여한 영화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은퇴한 총 잡이 클린턴 이스트우가 아니다. 보안관의 폭압에 항거하기위해 돈을 모아 그를 고용하는 매춘부들이다.

지금과 같은 각박한 세상에서는, 밝고 따듯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지키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수다는 필수적이다. 여성의 수다는 남성들의 행복과 부메랑(boomerang)막기 위한 것이다.

자신들의 위치에서 수다를 떨면서, 여우같은 고집으로 살아가는 스스럼없는 여성들에게 나를 포함한 모든 남성들은 각별한 시각으로 애써야 한다고 가벼운 상념을 해보는 오붓한 가을 저녁이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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