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한-일 합병이 체결되자 ‘새도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어렵구나, 세상에서 글 아는 사람 노릇 하기가’라는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 이는 매천 황현이다. 100여 년 전 망국의 현실을 압축하고, 여기에 ‘무궁화 온 세상’이라는 절절한 표현을 덧붙이고 있다.
무궁화는 우리 겨레의 얼이 담긴 국화이다. 무궁화의 강한 생명력을 이해한다면, 무궁화가 왜 우리의 국화로 선택되었는지 알 수 있다. 무궁화는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며 피어나고 번식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완강한 자생력이 우리 민족의 기나긴 역사의 얼과 맥에 연결이 된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무궁화의 자생력은 우리 민족의 얼과 맥에 부합하는 적합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무궁화는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의 정초식에서 불렀던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부분을 시원(始原)으로 하였다. 그리고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동시에 애국가가 국가로 채택되면서 무궁화는 자연스럽게 국화로 자리매김 되었다
화려한 연분홍색에서 소박한 흰색 꽃 잎. 아사달과 아사녀, 첫사랑과 늘사랑 등 고운 이름 앞에선 저절로 발길이 멈춘다. 무궁화는 목근이나 근화 등으로 불리다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 일편단심의 꽃말을 지녔고, 외세 침입이 노골화되던 지난 1890년대부터 나라꽃으로 여겨져왔다. 분홍 꽃잎의 재래종 무궁화가 많이 알려졌지만, 세계적으로는 250종이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일본 강점기 시절,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은 무궁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만주, 상해, 미국, 유럽으로 떠난 독립지사들이 광복 구국정신의 표상으로 무궁화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일본은 무궁화를 만지면 핏발이 선다, 가루가 묻으면 눈병이 난다 등의 악선전을 했다. 특히 무궁화를 ‘눈의 피 꽃’이라 하여 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선다고 거짓 선전하였다. 그리고 ‘부스럼 꽃’이라 하여 손에 닿기만 해도 부스럼이 생긴다고 하는 등 갖은 억지말로 무궁화 탄압에 앞장섰다. 무궁화에 관한 수난이 가중되면 될수록 우리민족 정신을 대변하는 무궁화를 사랑하고 숨겨 가면서까지 지켜왔다. 우리나라는 매일 꽃잎이 졌다가도 다시 피어나는 무궁화를 보며 굳센 의지를 배웠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독립하리라는 다짐을 마음속으로 새겼다. 이에 당황한 일본은 무궁화가 보이는 즉시, 불태워 버리고 뽑아 없애 버렸다.
무궁화 나무는 7월에서 10월까지 100일 이상 꽃이 핀다. 각각의 꽃 한송이는 하루밖에 피지 않고 대신 매일 한 가지에서 새로운 꽃망울이 열린다. 한 가지에서 계속 피기 때문에 늘 피는 것처럼 보인다. 무궁화 겉껍질은 종이의 원료로, 꽃과 잎은 차로도 쓰이고, 줄기와 뿌리는 불면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무궁화를 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제주도에 있다. 60~70년대 영화감독으로 유명했던 편거영씨가 바로 그이다.
편거영씨는 현재 무궁화박물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1,100도로 옆으로 무궁화 관상목 길을 조성하였으며, 10년에 걸쳐 제주도 곳곳에 무궁화동산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미리내 공원에 무궁화나무 250여 본을 심어 쓰레기 매립장이 체육공원으로 변모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을 비롯하여,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주제로 마라도에 무궁화 500여 그루를 심고, 신산공원에 무궁화 돌보기를 기화로 노형 로터리 가는 길 목 11군데에 무궁화 쉼터를 조성, 길 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들고 있다. 또한 서귀포시 충혼묘지 묵념 탑 양지 바른 곳에 무궁화동산을 만들어 40년 생 백단심과 25년 생 홍단심 5그루, 그 외 30여 그루의 무궁화나무를 평생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애국충정으로 정정작업과 지주목 세우기를 하였다.
무궁화의 영어명 ‘Rose of Sharon’은 ‘신에게 바치고 싶은 아름다운 꽃’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하면 ‘어사화’에 무궁화를 꽂았으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활 속의 무궁화로 가장 영예로운 훈장도‘무궁화대훈장’이다. 또 각종 지도와 화폐, 우표 등등 우리생활 곳곳에서 무궁화 문양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 피었네, 피었네, 우리나라 꽃/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