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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대전지검 차장검사로 좌천됐던 제주지검장이 “현 정권은 겸손 하라”는 사퇴의 변(辯)을 남기고 검사생활을 접은 적이 있다.
그때 그 검사장의 ‘사퇴의 변’이 크게 화제가 됐었다. 화제가 된 것뿐이 아니라 주위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었다.
왜 화제가 되고, 공감을 얻었겠는가. 정부의 검찰인사가 도무지 올바르지 못한 데다, 사표를 던진 검사장이 현 정권을 향해 “겸손 하라”며 할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당시 제주지검의 박영관 검사장이었다. 그는 지난 1월 검사장급 정기 인사에서 대전지검 차장검사로 발령이 났던 것이다.
대전지검 차장검사는 어떤 자리인가. 검사장급으로 승진되면서 가는 자리다. 즉 특별한 다른 이유가 없는 한, 현직 검사장이 가는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영관 현직 제주지검장을 대전지검의 차장검사로 밀어냈으니 누가보아도 무사공평(無私公平)한 인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사표를 낼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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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의 제주지검장에 대한 비슷한 인사가 또 다시 되풀이 돼 말들이 많다. 12일자로 단행된 법무부의 검사장급 인사에서 김정기 제주지검장이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은 검사장급 자리라고는 하나 초임 검사장급이 가는 곳이다.
여기에 일개 지검의 현직 검사장 보고 가라 했으니 당사자로서는 납득하기가 쉽지 않았을 줄 안다. 그런데다 대검 부장 자리는 김정기 검사장의 사법시험 동기 3명이 이미 고검장, 혹은 고검장급으로 승진하면서 거쳐 간 자리다.
김 검사장이 인사발표 직후 사표를 제출, 퇴임식이 끝나자마자 제주를 떠나버린 심정을 알만하다.
제주지검은 최근 8개월 동안 2명의 검사장이 자진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난 기록을 남겼다. 두 검사장 사퇴 이유가 모두 공평무사(公平無私)하지 못한 인사 불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 검사장은 현 정권에 대해 할 말을 하고 갔고, 다른 한 검사장은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까지를 가슴에 묻고 떠난 점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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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주지검에 대한 인사 푸대접은 2년 전에도 있었다. 2007년 초 당시 김상봉 제주지검장이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발령된 예가 그것이다. 고검차장 자리도 검사장급 승진 자가 가는 곳으로서 이 역시 좌천 인사였다.
제주지검장에 대한 계속된 좌천 인사로 제주 푸대접, 제주 소외론이 대두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인심(人心)의 표출이다. 그리고 향후 공평무사한 검찰 인사를 바라는 도민적 희망이기도 하다.
과거 제주지검은 승진의 발판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실제로 제주지검 출신 검사-차장검사-검사장들이 법무장관 등 요직에 기용된 예는 흔했다.
그런데 어찌해서 근년 들어, 특히 현 정권 들어 제주지검이 푸대접을 받고 소외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 정권은 앞으로 제주지검의 사기(士氣)문제도 고려해 주었으면 한다. 제주는 옛날의 귀양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