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예술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의 하나이다. 그렇지만 직설적인 보도 사진 혹은 다큐멘터리 사진이 진실을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고통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상처받은 무의식에 도달하는 데는 어떠한 사진 작업이 필요할까? 한국전쟁을 경험한 우리들이 집단학살의 기억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사진예술을 통하여 가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한 4 __ 3을 체험한 제주인들이 사진예술을 통한 자기 확인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사진작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발언하고, 대변하고, 기록하고, 표현해야 한다. 위대한 사진작가란 사진을 기술적으로 잘 찍는 이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처한 당대의 역사적 좌표를 사진으로 자각하고 확인해 나가는 이들이라 말할 수 있다. 작품 속에 역사를 향한 물음이 존재해야 훌륭한 사진작가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군정 시절 제주섬에는 ‘빨갱이 사냥(Red Hunt)'을 한다는 이유로 군경과 서북청년단이 도민을 집단학살하였다. 바로 제노사이드(Genocide)가 행해졌다. 섬 곳곳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학살의 현장이 곳곳에서 산재해 있다. 이들의 시신은 암매장 됐고 역사는 그렇게 흘렀다. 이를 경험한 제주도의 사진작가들도 비록 세월이 흘렀지만, 집단학살의 현장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바로 탐라사진작가협의회 회원들이다.
그들은 지난 해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사진전을 개최하고, 돌보는 이 없이 아무렇게나 방치됐던 희생자를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역사의 순간순간을 기록한 역사사진집 『뼈와 굿』도 발간하였다. 특히 1992년 4월 2일, 다랑쉬굴에서 11구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4__3의 참상이 침묵의 역사를 거부하고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과테말라 사진작가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Daniel Hermandez_Salazar)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집단학살의 기억을 한국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의 사진작업은 바로 중남미에서 내전을 겪은 과테말라의 현대사를 바탕으로 한다. ‘예술인가, 선동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서 과테말라 내전과 집단학살, 집단폭력의 기억 등을 주제로 삼는다. 그의 내면은 집단학살이라는 대중의 피해현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는 전쟁을 경험한 한국인과도 집단학살의 기억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기회에 살라사르가 찾아간 공주왕촌 현장은 1950년 7월 9일경 당시 공주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수백 명이 트럭으로 실려와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희생된 장소이다. 현재까지 30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됐고 100구 이상의 유해가 발굴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공주 일대 유골발굴조사 현장을 둘러보며 샤터를 눌렀다는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대학살을 환기하는〈천사〉라는 사진작품을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등 ‘학살의 기억’을 중심테마로 작업하였다. 그의 작품은 과테말라 등 중남미뿐만 아니라 미국, 스위스, 프랑스, 일본, 스페인 등지에서도 전시되어 현지에서 깊은 공감을 받았다.
제주어른들은 4 __ 3을 이야기할 때 ‘난리통’ 또는 ‘시국’이라고 말한다. 하룻밤 사이에 한 마을에서 수십 또는 수백 명이 이유도 없이 살해당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제대로 기록되고 전달되지 못했다. 때문에 훗날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설마?”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 설마가 하나둘 사실로 드러나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엎어진 상태로 발견된 유해, 그리고 그 주변에 뒤죽박죽 엉켜있는 수많은 유골들. 그 무슨 말로 그날의 참상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날의 처참한 현장이 늦게나마 적나라한 사진과 함께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는 자체가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1990년대 이후 4 __ 3유해의 발굴과 수습현장에서 카메라로 기록했던 『뼈와 굿』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