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이가 생의 중반기를 넘은 남녀동창들 끼리 오름 동아리를 짜서 매주 마다 오름 등산을 해온지가 몇 해가 넘었다. 옛부터 산으로 가는 길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등산(登山)이고, 하나는 입산(入山)이다. 등산이 땀 흘리고 운동하는 산길이라면, 입산은 삶의 궁지에 몰렸을 때 해답을 모색하고 구원을 갈구하는 산길이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있는 말이다. ‘통즉등산(通則登山)’ 이요, 궁즉입산(窮則入山)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잘나갈 때는 등산을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는 입산을 한다는 말이리라, 우리는 비록 나이는 인생 후반기이고 처절하게 생존에 시달여온 세대지만 등산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잘나가는 쪽이라고 자위 해본다.
우리는 올라 갈 때에도 막걸리를 가지고가서 등산 용 컵으로 목을 추길 때도 가끔 있고.
내려와서 정심을 할 때 먹는 술은 당연히 막걸리다.
막걸리는 우리세대에게는 향수에 깃든 술이다. 군복무시에 PX(군부대기지내의 매점)에서 물탄 막걸리를 안 먹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시 군대매점에서 물탄 막걸리는 고향의 그리움을 잠재우는 생명수였고, 애인 생각으로 애타는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청심환이었다.
과거 6, 70년대에, 제주시에서 제일 번화가인 칠성통에 ‘학사주점’이라는 막걸리목로주점이 있었다.
그 당시 그 주점은 대학생 단골 주점이다. 주점 벽면에는 대학생들의 낙서로 인테리어를 장식 했었다.
낙서 내용은 지금 가물가물하지만 막걸리는 ‘농군(農軍0의 술, 학사의 술, 산 꾼들의 술’ 이라는 낙서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나이 세대에서 막걸리는 추억의 술이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도 막걸 리가 뜨고 있다.
며칠 전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우리나라 외식 트렌트를 선도한다는 퓨전(fusion)주점에 가 봤다. 테라스(terrace) 테이블 마다 멋쟁이 젊은이들이 고급요리를 즐기고 있다.
와인 디켄터(decanter) 같은 유리병에 있는 술은 와인이 아니라 뽀얀 쌀 막걸리였다. 나도 한잔 해보니 제주 쌀 막걸리와 꼭 같은 맛이다.
내가 막걸리 맛을 아는 것은 대학(전문가과정) 같은 조 모임에 제주 막걸리회사 경영진 한분 있다.
중견 여성이다. 이분이 정기적인 미팅 날에는 당일바리 막걸리를 가져온다. 우리들의 당일바리라는 말은 그날 잡은 바다고기를 빗대어 당일 만든 막걸리라는 말이다. 그래서 막걸리 맛은 조금 알고 있는 터이다.
요즘 제주에서도 막걸리가 다양화 하고 있다. 좁쌀막걸리, 감귤막걸리, 얼음 막걸리 등등 새로운 막걸리가 있다. 그런데 전통이 짧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제주 쌀 막걸리가 서민들의 정서와 입맛에 궁합이 맞다는 애주가 들이 많다.
막걸리도 삶의 연륜과 같이 오랜 전통의 숙련세월을 막걸 리가 요구하는 것일 수 있다. 막걸 리가 요구하는 숙련의 세월, 이건 술의 문화이며 삶에 비타민이다.
그 퓨전 주점에서 막걸리 사발에 은은히 빛나는 우유빛깔 쌀 막걸리는 고급스러운 정원 술집 분위기와 썩 잘 어울렸다.
사실 막걸리는 요즘 트렌트와 딱 이다. 최근 주류(酒類)의 세계적 트렌트는 한마디로 여성 형의 술이다. 도수가 낮고, 고유한 맛이 있고, 안주가 별 필요가 없는 술이 여성 형 술이다. 위스키, 보드카, 소주가 남성 형이라면 와인, 막걸리는 여성 형이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집에 촛불을 키고 음악을 들으면서 와인을 즐긴다.
이런 경향은 단지 빨리 마시고 금방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 함께 분위기에 젖으며, 공감과 소통이라는 여성적 가치에 충실하기 때문일 수 도 있다. 막걸리야말로 이런 조건에 너무나 완벽한 술이다.
막걸리와 산은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막걸리는 농군의 술이고, 서민의 술이다.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술이다.. 산도 언제나 말없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맞이해 준다.
우리 서민들이 처절하게 생존에 시달이면서도 그나마 생존을 유지하고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은 산이 있기 때문이다.
산은 가난한자도 부자도 평등하게 받아드린다. 막걸리도 부자도 먹을 수 있고 가난한자도 먹을 수 있는 술이다.
삶의 버거울 때면 암벽이 많은 산에 가는 것이 좋고, 또 삶의 힘들 때 막걸리 몇 사발 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생활철학이었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