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괴편지의 진실게임
[김덕남 칼럼] 괴편지의 진실게임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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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편지’의 진실공방

 ‘1894년 9월 어느 날, 프랑스 군 참모본부는 파리주내 독일대사관에서 훔쳐낸 한 통의 편지를 입수했다. 발신인은 익명이었고 수신자는 독일대사관의 무관이었다.

편지 속에는 프랑스 육군 기밀문서의 명세가 들어 있었다. 프랑스 육군 장교가운데 적에게 기밀을 파는 스파이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무고한 유대인 포병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반역자로 몰린다. 그는 치욕적인 불명예제대를 당하고 불령(佛領) 기나이의 악마도(惡魔島)에 유배되어 참혹한 유형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서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진보적 지식인들과 군부를 포함 왕당파, 국수주의자 간 격렬한 진실공방이 계속된다. 결국은 드레퓌스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진실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한사람의 인권과 인격과 명예는 만신창이가 됐다. 이 기간 10여년, 프랑스 사회 역시 반목과 혼란의 격랑에서 헤어나지 못했었다.‘

 이처럼 당시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었던 드레피스 사건은 도도한 역사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배경이 깔려있었다 해도 불씨는 ‘익명의 편지 한통’이었다.

제주에서도 ‘괴편지 몸살’

 시대 배경이나 사회 상황, 진실의 내용 등은 드레퓌스 사건과 하늘 땅 차이지만 지금 제주에서도 ‘익명의 괴편지’ 파문이 일고 있다.

 제주대 직선 총장 후보가 익명의 투서가 발단이 되어 임명이 작정 없이 지연되고 있다.

대학의 자율권과 민주적 가치는 유린되었다. 이 때문에 대학사회는 반목과 갈등으로 극심한 내홍에 휩싸여 있다.

 또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도지사 출마자로 거론되는 자천타천 7명에 대한 융단폭격 식 익명의 괴편지가 뿌려졌다. 경찰이 확인한 것만 해도 4200톤이다. 6월15일자 우체국 소인이 찍한 편지들이다.

성추행 사건과 선거법 위반 사건 관련, 개발사업과 연결된 3억원 수수설도 거론됐다.

 “요즘도 여자만 보면 무릎에 앉혀 브라자 끈 마지고 목덜미에 콧김 불어 넣는다”는 음란물 수준의 황당하고 엽기적인 내용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당장 범인을 잡아 치도곤 칠 듯 눈 부라리던 경찰 수사는 한 달 가까이 제자리걸음이다.

‘안 잡는 건지, 못 잡는 건지, 아리송하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 이상한 일은 거론되는 7명 모두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데 있다.

모욕적이고 인격살인 수준의 괴편지 내용을 수긍하고 인정해서 침묵을 지키는 것인지, 대꾸할 가치를 못 느껴 침묵하는 것인지 헷갈릴 뿐이다.

 그래도 수사 쪽에든, 자신의 입장이든, 가타부타 뭔가 입을 열어야 할 문제가 아니던가.

匿名이라도 진실규명 필요

 당사자들의 침묵이 계속될수록 괴편지 내용은 부지런히 새로운 새끼를 치고 있다. 이상하게 살이 붙으며 사실인양 그럴듯하게 유포되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선거법 위반 수사와 함께 편지내용의 사실여부도 규명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익명성의 해악은 철저히 응징되어야 하지만 익명의 투서라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논리다. 관련자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진실규명이 필요하다.

 특히 도지사가 되겠다는 사람에게는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만약 편지내용대로 성추행 사건이나 선거법 위반, 노물수수사건 등에 연루됐었다면 이런 인사를 지도자로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도민의 명예와 자존심에 관한 문제여서 그렇다.

 이번 괴편지 내용에 대한 실체적 진실규명 작업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찰 수사의 마지막 자존심과 명예를 위해서도 필요한 이유다.

 사실 익명성에는 양면이 있다. 순기능과 역기능이다. 정의와 진실 규명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순기능적이라면 ‘반사회적 두더지 놀음‘의 해악은 역기능이다. 그래서 익명성에 대한 선악의 선택은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이것이 수사답보의 변명은 될 수가 없다. ‘괴편지의 진실게임’에 대한 도민의 관심은 터질 듯 팽팽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수사에 대한 도민적 관심 역시 클 수밖에 없다.   

김  덕  남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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