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술과 담배값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국세인 담배소비세를 신설해 가격을 올려 '죄악세' 기능을 갖도록 해야한다 것.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불경기에 담배와 술값을 올려 서민 경제에 부담을 주는 게 옳으냐는 반론이 많다.
◈ 가격 올린다고 소비가 감소할까?
한국조세연구원이 8일 소비세제 개편 토론회를 주최했다. 지난달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을 설명하며 세수확보를 위해 간접세 인상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그 방법으로 외부불경제 항목에 대한 세금인상을 언급했다. 이는 술과 담배값 인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조세연구원은 이날 지경부의 용역을 받아 가진 토론회에서 인상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했다. 핵심은 국세인 담배소비세를 신설해 가격을 올려서 죄악세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
경제용어로 '외부불경제'란 말이 있다. 개인이나 기업의 행위가 다른 경제 주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술, 담배, 공해 방출 공장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세금을 무겁게 물려서 이용을 억제하는데, 사회에 끼치는 해악 만큼 무거운 세금으로 사회적 보상을 받는 일종의 '죄악세'인 셈이다.
문제는 가격을 올리더라도 소비가 줄어드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
담배는 지난 2004년 12월에 가격을 25% 인상한 적이 있다. 상당히 큰 폭이다. 그러나 인상 시점부터 3년간의 담배 판매량은 한해전인 2003년 수준과 거의 같았다.
한갑에 500원에서 1000원 정도 인상해 봐야 아직 중독성이 낮은 청소년들의 소비는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일을지는 몰라도 전체 판매량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것. 오히려 저질 담배의 수입을 자극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도 비슷한 분석을 했다. 가격을 인상해도 담배소비량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KT&G의 주가에도 별 영향이 없다는 것.
술도 다르지 않다. 역사적으로 금주령을 내린 적이 많다. 종교적인 이유나, 우리 나라처럼 흉년에 쌀소비를 줄이기 위한 것. 영조 때는 집권 기간 내내 금주령을 내렸다. 심지어 음주를 이유로 사형에 처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때도 술은 그대로 있었다고 사서에 기록돼 있다. 목숨을 걸고 몰래 밀주를 만들어 먹은 것.
술은 담배에 비해 가격의 선택 폭이 더 넓다. 값이 더 싼 술을 소비하는 경향은 생길 수 있지만, 전체 소비량에는 별 변화가 없을거란 분석이 많다.
◈ 서민부담만 가중
결국 담배값 인상은 서민 부담만 늘어나고, 소비를 줄이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흡연율 감소는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는 데 따른 영향이 크다. 웰빙문화가 확산되면서 술과 담배 소비를 줄이기 때문. 그나마 건강을 위해 금연 금주 결단을 내리는 사람은 생활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와 한국금연운동협의회와 공동으로 지난해 12월 실시한 것인데, 만 19세 이상 성인 흡연율은 22.3%로 6개월 전보다 0.4% 포인트 상승했다. 웰빙 문화의 확산으로 흡연율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들어 증가한 것이다. 원인은 경기 불황이었다.
실직, 부도 등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다시 흡연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술과 담배의 주된 소비층은 서민이란 이야기이다. 가격인상이 결국 서민들의 부담만 더 가중시킨다는 것.
◈ 담배값 인상은 한나라당 반대로 무산됐던 것
지난 2006년에도 정부가 담배값 인상을 추진하다 무산된 적이 있다. 참여정부와 당시 여당은 지난 2004년말 담배값을 올리면서 다음해에 추가 인상을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여론과 야당의 반대로 못했다. 그리고 2006년에 정부와 여당은 다시 인상을 시도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강력한 반대로 또 무산됐다.
당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소득 분배가 극도로 악화돼 통계가 작성 이후 최악'이다고 하면서 "사행성 게임인 바다이야기로 서민을 착취한 것도 모자라서 정부 여당이 담배값 추가 인상을 통해 서민 쥐어짜기를 계속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지금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서민이 느끼는 생활고가 그때보다 더 크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찬성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 만약 한나라당이 찬성한다면 당시 주장은 서민을 내세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셈. 한나라당의 반응이 궁금하다.
◈ 부자감세, 서민증세(?)
정부가 부자들에 대해서는 감세정책을 써서 세수 감소를 초래해놓고, 술과 담배값을 올려서 빈 곳간을 채우려고 한다는 비판도 많다.
정부는 재산세, 종부세, 기업에는 법인세 같은 직접세를 인하했다. 이런 세금은 비교적 자산이 있는 사람들이 물게되는 것. 당연히 세수는 감소한다. 그런데 빈 세수를 매우기 위해 간접세, 그것도 술과 담배값부터 올리겠다는 것은 서민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
빈부 격차의 축소 효과가 있는 직접세는 줄이면서 납세자가 특정되지 않은 간접세 비중을 높이는 건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서민 우선 정치와도 맞지 않다.
◈ 술과 담배 소비는 어쨌든 줄여야
조세 연구원의 토론회 발표로는 음주와 흡연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24조원을 웃돈다. 사회경제적 비용은 암 발생이나 음주사고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엄청난 비용이다. 당연히 소비를 줄일 수록 좋은데, 금연 금주를 유도하도록 캠페인과 프로그램 개발에 더 힘을 써야겠다.
또 장기적으로 담배와 술값을 올려야 하는 것도 맞다. 우리의 담배값은 OECD 국가 중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렇지만 시점이 문제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술과 담배값 인상을 들고나와서 서민 부담을 더 가중시키는 것이 맞느냐 하는 것. 더구나 부자감세 논란으로 여론도 좋지 않다.
윤증현 기재부 장관은 국민건강도 증진하고 세수도 확충하기 위해 담배와 술값을 올려야 한다고 했는데, 세수증대는 모르겠지만 국민건강에 대한 진정성은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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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해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