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산다는 것
[세평시평] 산다는 것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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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의 존엄사 판결 이후 벌어지고 있는 ‘죽음’ 논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금기에서 일상으로 끌어내는 뉴스가 잦아지고 있다.

오늘 한 중앙일간지 기사 내용이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여성(75세) 말기 암 환자의 말이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진통제로 고통을 견디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슬프게 생각하지 않는 다고 했다. 

앞에 간 ‘지인’도 있고, 자기보다 뒤에 올 ‘사람’도 있으니까 즐겁다고 하면서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나는 이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산다는 것 그 자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산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된다는 것이고, 생명이 유지된다는 것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서 반드시 변하고 마침내 사라지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인 것을 알면서도 생은 유한 것이기에, 우리는 삶에 관념적으로 인위적인 가치를 만들어 붙이고 삶에 집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생의 종점을 향해 하루하루 변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고 지금의 나는 조금 뒤의 나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의 틀 속에서 마음의 뜰에는 우수의 그늘이, 인간적 비애가 서려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린 선택된 행운과 축복으로 탄생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 지구상에는 1,000만종 이상의 생명이 있다고 한다. 그 생명 중에 하나가 인간이다.

그리고 지구상에 인구도 67억이다. 그 67억중의 ‘나’라는 하나이고 혼자이다.  탄생도 혼자이고 죽음도 혼자이다.

탄생과 죽음 사이 일생도 어떻게 보면 혼자 일 수도 있다.

사람의 죽음을 생각하면 쓸쓸하고 모든 인생사가 부질없고 덧없음을 느끼지만 참고 견디면서 죽음이 올 때 까지는 살아야한다. 아니..... 살 수 밖에 없다.

불가에서 말하는 사바세계(娑婆世界)라는 말이 있다.

사바세계란 범어(梵語)에서 온 말인데 세상은 낙원이 아니고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참고 견디며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짐승이나 다를 게 없다.

사람의 삶은 보다 높은 가치를 찾아 삶의 의미를 순간순간 다지고 아름답게 살고 아름답게 죽으려는 노력이 필요 한 것이다. 

잿빛이 늙음과 질병과 죽음은 누구에게 오는 것이다. 빨리 오고 늦게 오는 차이 뿐이다.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하나같이 인생은 짧다고 한다. 어물어물하고 있을 때 인생은 끝나 버린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은 한번뿐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존재인 우리들,

그렇다면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자신에게 배정된 그 한정된 시간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불가의 어록(語錄)으로 전해 내려오는 ‘생야전기현(生也全機現)사야전기현(死也典機現)’말이 있다.

이 말은 살 때는 삶에 철저하여 그 전부를 살아야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하여 그 전부를 죽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삶에 철저 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을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죽음에 당해서도 조금도 생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살 때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잘 죽지 못하는 것은 실패한 인간이라는 말이다. 이게 어디 자신의 노력과 마음으로 될 일인지? 수선스럽다.

그러나 사는 것도 내 자신의 일이고 죽음도 내 자신의 일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은 전력을 기울여 여물게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미련 없이 신속하게 물러  나고 싶은 것은 범 생들의 간절한 바람 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무명(無明)에 가린 나는  ‘나’를 중심가치(中心價値)에 올려놓고 ‘나’이외의 모든 가치는 옆으로 내려놓고선  산다는 것이 남보다 더 갖기 위한 경쟁의 과정처럼 생각해온 내 과거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나는 탐욕과 분별 심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자신이 없어서 괴롭고 부끄럽다.

모든  탄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변하고 인연이 다하면 사그라진다는  움직일 수 없는 진리에 앞에서 마음의 번뇌와 집착을 내려놓고 고요한 마음으로 주제넘은 짓인줄 알면서도  참회하고 싶은 여름 저녁이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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