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진보정치가 가능할까. 부시정권 시절 북한, 이라크, 이란을 나타내는 ‘악의 축’이라는 표현으로 우리는 얼마나 가슴을 조아렸던가. 당장 북한을 공격할 것 같은 미국의 분위기로 일이 터질 듯한 긴장상태를 우리는 경험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버락 오바마 시대이지 않은가.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뉴욕타임스가 지적한대로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다.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그는 2005년 미국 포린폴리시와 영국 프로스펙트 선정한 '이 시대 최고 지성 100인' 1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역사가 증명해 주듯이 ‘최후의 힘’이 결집되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고 어떤 변화라도 이룰 수 있다”고 말했으며, 제주4__3에 대해서도 “제주4__3항쟁과 같은 끔찍한 사건에 있어서 미국의 책임이 크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또 정치경제학자 폴 스위지(Paul M. Sweezy)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마르크스주의 운동사에서 그가 차지해온 위치와 역할, 그의 삶이 남긴 궤적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야만성이 보다 심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그가 남긴 지적 유산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게 하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 진보진영과 대중은 서로 오해하기 쉽다. 대중은 진보적 정책과 가치들에 동의한다. 어려운 것은 그것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가 바로 당신들이 원하는 것과 같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대중이 진보진영에 대해 지니고 있는 편견과 선입감, 고정관념을 돌파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보진영이 그들의 편이라는 걸 설명해줘야 한다. 오바마가 이것을 이해하고 설득하면서 결국 승리했다
오바마 당선 이후, 미국 진보운동가 1천여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이젠 미국의 미래야!’(America's Future Now!)라는 주제의 대회를 열었다. 그들은 오바마의 당선으로 미국은 중도 또는 중도좌파국가라고 입을 모았다. 오바바의 당선은 시작일 뿐 끝이 아니라며, 워싱톤의 구시대 정치가 오바마의 진보적 목적달성을 막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진보진영에 달렸다고 목청을 높였다.
미국의 진보진영은 2003년 정책회의를 시작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좌파들의 결집장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전국민의료보험과 에너지 독립, 이라크 철수 등의 진보적 의제들이 받아들여졌고, 오바마의 당선이란 결실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의 진보운동이 오바마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과연 무엇일까? 2005년 초까지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조지 부시의 재집권을 이끈 칼 로브가 공화당 영구집권을 공언할 정도로 보수세력의 기세가 등등했다. 잇따른 선거 패배 이후 침체에 빠져 있던 진보진영과 민주당은 어떻게 4년 만에 상황을 역전시킨 것일까?
오바마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정치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최고라는 것이 미국의 분위기다. 빌 클린턴이 수백 명 단위의 그룹에서 탁월한 소통능력을 보였다면, 오바마는 텔레비전을 통해 수백만 대중과 소통하는 재능을 지녔다. 오바마가 말하면 사람들이 믿는다. 진보진영은 힐러리 클린턴보다 이라크전에 좀더 선명하게 반대한 오바마를 지원했고, 오바마는 대중에게 진보적 가치와 정책을 간명하게 전달했다.
이처럼 미국의 진보진영은 스스로 변화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미국 대선 당시, 오바마의 이상주의, 국민들이 오랜만에 가져보는 희망, 현재의 경제위기 등이 표를 휩쓰는 원동력이며 오바마가 미국의 변혁을 가져올 지도자로 그들은 오바마를 선택했다. 오바마 신화는 미국 진보·리버럴 진영의 장기적인 준비 속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