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생명산업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감귤. 지난 99년부터 2002년까지 내리 4년간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폭락으로 지역경제에 깊은 주름살을 남겼다.
이에 지난해 국내 농업사상 최초로 감귤에 대해 유통명령을 도입, 활로를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고품질감귤 출하 및 출하물량 조절을 위한 이 제도의 시행으로 조수입이 증가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자 올해도 재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28일부터 29일까지 농협제주지역본부 김선택 부본부장, 지방지 기자 등과 함께 서울 가락동농산물시장 등 대도시 4개 도매시장을 방문, 유통명령의 준수 여부 등 감귤유통실태를 점검했다.
감귤유통 취재단은 지난 28일 오전 2시 국내 최대의 농산물공판장인 서울 가락동 농산물도매시장을 먼저 찾았다. 한밤중인데도 가락동시장에는 불이 환하게 켜진 가운데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농산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가격이 매겨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2시 40분쯤 드디어 제주에서 반입된 감귤에 대한 경매가 시작됐다. 가락동 농산물도매시장 소속 중도매인 20여명이 참가한 감귤경매는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마무리됐다. 경락가는 10kg, 15kg 상자 모두 전날보다 하락했다.
그러나 이날 경매에 부쳐진 노지감귤에서는 강제착색이나 비상품감귤이 거의 보이지 않는 등 지난해와 달리 유통명령이 시행 초기부터 빠르게 정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부패과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중도매인들은 “감귤의 가장 큰 문제인 강제착색행위가 눈에 띄게 주는 등 올해산 감귤 품질이 대체로 좋아졌다”며 “게다가 감귤 맛이 예년보다 좋아 소비자 인식도 점차 호전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중도매들은 그러나 “후숙기술의 발달로 꼭지부분이 시꺼멓게 안 될 뿐이지 강제착색행위는 여전하다”고 주장,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중도매인들은 특히 “원산지를 속이는 행위를 시급히 차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감귤주산지별로 가격차가 심한 것을 기화로 선호도가 높은 지역으로 옮겨가 선과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한 중도매인은 “과피가 뚜껍고 신맛이 강해 서귀포지역에서 생산된 게 아님이 분명한데도 서귀포상표가 버젓이 붙어 오는 경우가 있다”며 “이러면 제주감귤 전체의 신뢰도가 함께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감귤박스에 불만도 많았다. “골판지 상자의 강도가 떨어져 파손이 많고 또한 습기에도 약해 부패과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10kg 이하의 소포장과 함께 상자 강도를 높일 것”을 주문했다.
김정배 가락농산물공판장 경매과장은 이와 관련 “감귤상자 디자인이 너무 밋밋하다”며 “색상을 원색으로 하는 등 화려하게 하는 것이 중도매인들이 눈길을 끄는데 유리하고 가격도 높게 받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 “감귤경락 최고가를 높여 편차를 더 벌리는 것이 전체적으로 감귤값을 상승시키는 길”이라며 이를 위해 전면적 기계화에서 탈피, 수작업으로 선별을 강화하고, 지역단위의 홍보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9일 오후 3시 부산 엄궁동도매시장을 찾았을 때 상인들은 감귤에 대해 더욱 매몰찬 지적을 쏟아내 취재단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중매인 전정희(68)씨는 “상자당 평균 10~15개의 부패과가 나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상인들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감귤을 아예 취급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취재단이 무작위로 전씨가 전일 경락받은 감귤상자를 열고 확인한 결과, 155개들이 15kg(7번과) 상자에서 부패과가 무려 20%(25개) 가까이 나왔다. 더욱이 이 상자에는 출하자 이름도 없었다.
종전 후숙과에 대한 불만이 이제는 부패과로 옮아가는 형국인 셈이다. 이에 따라 부패과를 줄일 수 있는 방안강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왁스코팅을 하지 않고 출하하든 선과장의 화염열풍기 건조기를 온수열풍 건조기로 대체하든 조치가 필요하다. 또 통기성을 확보하는 등 골판지 상자의 구조개선도 미물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생산자 위주의 생산과 유통에서 벗어나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 제대로 파악, 개선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감귤산업을 회생시킬 수 있는 가장 첩경임을 이번 유통실태 점검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