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느끼려는데 봄의 자리엔 어느새 여름이 들어앉았다. 인생의 나이도 계절처럼 쉽게 바뀌어 간다.
봄날처럼 마음은 청춘인데, 나이는 벌써 육십의 문전에 다가와 있다. 한마디로 신노불심로(身老不心老)이다.
나이보다 젊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보니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안위하는 사람들 속에 끼어 살게 된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늘어나는 반면, 저 출산 영향으로 노령화사회는 가속화 되고 있다.
오늘날 60대는 노인이라고 여기지 않음인지 각종 단체에서는 55세까지를 청년부로 따로 분류하고 있다.
육십대를 장년층, 칠십대를 중년층, 80대부터 노년층이라 부르는 게 옳을 듯하다. 중장년층의 일자리 창출은 우리사회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직장에서 물러난 중장년층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그렇다고 노인당에 가서 어울리려니 머쓱한 나이로써 마땅하게 갈만한 곳이 없게 된다.
공직에서 물러난 B지사장이 퇴임 후 부모님의 지내는 고향 노인당을 방문했다가 겪은 이야기는, 아버지 친구들이 장기를 두다가 담배가 떨어지자 우리아이보고 사오도록 시키라고 해서 담배 심부름까지 했다고 한다.
‘방콕 대학생’과 ‘나달랜드 대학생’은 중장년층의 생활을 이분법으로 나눈 이야기이다. 손자나 돌봐주면서 방구석에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은 사람과,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 노력봉사와 초청강연을 다니면서 즐겁게 나다니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대별해 놓은 것이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노년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기에 노년층의 시간은 젊은이의 시간에 비해 더욱 아깝고 값진 것이라고 본다. 황혼이 아름답다는 의미는 마지막 열정을 두고 한 말이다. 열정이 남아있을 때까지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다.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이용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내일이 결정된다. 하루의 시간을 일 년 같이 보람되게 사용 할 수도 있고 반면에 잘못 사용하여 건강을 해치고 수명을 단축하게 만들기도 한다. 노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고 본다.
P교수가 보내 온 메일보따리 속에 노인으로 살아가는 여덟 가지 생활양태가 적혀있었다. 그도 老교수라고 칭하기엔 너무 젊게 보이는데 나이제한 옵션 때문에 올해 정년퇴임을 앞두고 깊은 사색과 술회가 녹아있는 것 같았다.
노년의 삶의 양태는 노선(老仙)과 노학(老鶴), 노동(老童)과 노옹(老翁), 노광(老狂)과 노고(老孤), 노궁(老窮)과 노추(老醜) 여덟 가지로 대별된다는 것이다.
노선(老仙)이란 늙어가면서 신선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노학(老鶴)은 늙어서도 학처럼 사는 사람이다. 심신의 건강을 돌보며 산천경계를 유람하고 검소하지만 천박하질 않다. 많은 벗들과 어울려 노닐며 베풀 줄도 안다. 틈나는 대로 학술논문이며 문학 작품집을 펴내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적 존경을 받게 된다.
노동(老童)은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아이처럼 사는 사람이다. 평생교육원이나 서원 또는 노인대학에 적을 두고 못 다한 공부를 한다. 컴퓨터와 한문 서예 등 학문도 배우고, 이따금 여성 학우들과 어울려 노래와 춤도 추고 여행을 하면서 즐거운 여생을 보낸다.
노옹(老翁)은 그저 늙은이로 사는 사람이다. 집에서 손자들이나 봐주고 빈집이나 지켜준다. 어쩌다 동네 노인정에 나가서 어울려 화투치고 장기를 두면서 지낸다.
노광(老狂)은 미친 사람처럼 사는 노인이다. 함량미달로 존경도 못 받으면서 감투욕심은 많아 온갖 우두머리를 도맡아 하려고 한다. 많은 돈을 탐내며 권력의 끄나풀을 잡기위해 노구를 이끌고 이 곳 저 곳 기웃거리며 살아간다.
노고(老孤)는 아내를 잃고 외로운 삶을 보내는 노인이다. 중년의 상처(喪妻)는 인생의 3대 악재(惡材)의 하나라고 한다.
노궁(老窮)은 늙어서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사람이다. 갈 곳이라곤 공원광장 뿐이다. 점심은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한다. 석양이 되면 쓸쓸히 돌아와 며느리 눈치를 보면서 골방으로 스며든다. 사는 게 괴로운 노인들이다.
노추(老醜)는 늙어서 추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다. 불치의 병을 얻어 타인의 도움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가련한 노인이다. 죽지 못해 연명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노년의 삶의 양태를 분석해 보며 대충 가야 할 길을 짐작해 본다.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몸을 만든다.’고 했다.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졸문(拙文)이라도 열심히 써야겠다.
강 선 종
총괄본부장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