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청소년까지 시국선언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대학교수들에 이어 종교계ㆍ문화예술계 등에서도 나왔다.
심지어는 10대 청소년들까지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다”며 시국선언을 했다.
이들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언론ㆍ출판ㆍ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을 독재자로 몰고 가는 쪽도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 현실이 이처럼 심각한 위기 상황인가.
누구나 자기주장을 펼 수 있다. 벙어리가 아닌 이상 자기 생각을 맘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자유로운 민주사회라면 그러하다.
통상 자신이 확신하는 가치와 이념을 현실에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비판적 식자층을 지식인이라 한다면 부당한 독재 권력에 맞서 비판하는 지식인의 역할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따라서 현실이 민주주의 후퇴를 가져오는 위기상황이거나 언론의 자유가 억압되는 독재적 핍박의 시대라면 최근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은 자유와 정의와 민주 사회를 밝히는 횃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국선언을 하는 쪽과 그렇지 않는 쪽의 시국상황 인식이 너무 다르다.
한쪽은 ‘민주적 위기’를 말한다. 그 반대쪽은 ‘기회주의 적 무책임한 선동’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해 못할 언론자유의 영역
정말, 우리의 민주주의는 위기인가. 역대 어느 정권의 민주기준과 비교했을 경우에 그렇다는 것인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언론 자유억압이라는 주장도 그렇다. 대통령을 ‘쥐새끼’, ‘살인마’라고 욕해도 아무렇지도 않는 나라다.
하수구에서 구정물 넘쳐나듯 정권을 향해 악취풍기는 막말이 온ㆍ오프라인을 도배해도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한다면 언론자유의 영역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규율 없는 자유는 방종(放縱)일 뿐이다.
소위 대통령 직계에서 쓴 소리가 나오고 여당이 대통령을 향해 험한 말을 해도 게걸음 치듯 슬금슬금 눈치나 보는 대통령을 독재자라 할 수 있을까.
최근 DJ는 “이 땅에 독재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지 말라”는 선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DJ도 재임시절 외국 언론으로부터 “선출된 독재자(elected autocrat)”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독재적 방식(autocratic way)으로 나라를 이끌고 있으며, 한국은 법의지배(the rule of law)가 아닌 통치자의 지배(the rule of the rulers) 아래 있다는 비판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었던 그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惡)의 편”이라고 들고 일어나기를 부추기고 있으니 희한한 세상이요 부끄러운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너도 나도 덩달아 집단질주
순도 100%의 황금이 있을 수 없듯이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판단과 주장에 항상 오류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는 전제 아래 균형과 견제 장치를 마련한 제도가 우리가 채택한 공화주의 적 민주체제다.
100%의 자유, 100%의 정의, 100%의 민주는 이상(理想)일수는 있어도 현실로 자리 잡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를 전제로 한다면 최근 봇물을 이루는 시국선언에는 ‘전부 아니면 전무식‘ 100%의 허상이 아른거린다.
지식인들의 집단행동이라면 감정과 분노의 배설이 아니라 논리와 합리의 바탕위에서 설득력 있는 사례가 전제되어야 했다.
관념적이고 감성적 주장만으로는 곤란하다. 그래서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이다.
왜 시국선언 교수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전에 검찰수사의 부당성과 민주주의 위기를 말하지 못하고 침묵했는가.
왜 험한 일이 일어나고 국민적 애도의 물결이 일어나서야 자유와 정의와 민주를 독점하듯 ‘죽음의 무등‘을 타고 선동의 깃발을 흔들고 있는가.
죽음의 엄숙함을 정치적으로 또는 이념의 사슬로 묶어 두려는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것이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지성의 탈을 쓴 기회주의 적 작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놈이 달리면 왜 달리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뒤따라 달리는 아프리카 초식동물의 집단 질주처럼 남이 소리 지르니까 너도나도 덩달아 악다구니 쓰는 집단 광기(狂氣)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시국선언을 찬성하고 긍정하는 쪽이 있듯이 이를 비판하는 쪽의 생각이 그렇다.
좌도 우도 아니고 진보나 보수의 이념적 사슬에 편벽(便僻)되지 않은 대한민국 대다수 순박한 보통사람들은 그래서 이념적 편 가르기가 식상하고 이런 혼돈(混沌)의 현실에 속상한 것이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