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주도(濟州島)가 과연 ‘평화의 섬’이 맞는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정부가 평화의 섬으로 선언했다 해서, 그리고 도민들 스스로가 평화의 섬이라고 자화자찬(自畵自讚) 한다고 해서 제주도가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제주가 진실로 평화의 섬이 되려면 전쟁이 없는 것만으로는, 또한 어떤 선언이나 자화자찬만으로는 부족하다.
명실 공히 누가 봐도 평화로운 고장이어야 한다.
평화로운 고장이 되려면 전쟁이 없어야 함은 물론이요 화합과 화목이 전제돼야 한다.
거기에 고요와 평온을 함께 곁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지금 제주도에 전쟁은 없다.
하지만 화합과 화목도 없다.
그러니 평온도, 고요도 있을 리가 만무하다.
다만 화합이나 화목이 있다면 이해득실(利害得失)이나 집단이기주의를 위해 뭉친 단체 내부에 한해 존재할 뿐이다.
이러고도 제주가 평화의 섬이라고 국 내 외에 자랑할 수 있을지 부끄럽다.
전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평화의 섬이 된다면 기아와 전쟁에 휘말린 곳을 제외한 세계의 거의 모든 섬이 평화의 섬일 터이다.
2
국외는 차치(且置)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제주도를 비웃고 있다.
그들의 눈에는 제주가 평화의 섬이 아니라 갈등과 분열의 고장, 아옹다옹 싸움 잘하는 지역, 투서가 많은 곳, 포용력 부족한 좁쌀 인심 등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솔직히 말해 제주민들은 이에 대해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작금년(昨今年)에 이르러서는 평화의 섬이라고 말하는 게 염치없을 정도로 타기(唾棄)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우선, 한데 힘을 모아 지혜를 짜면서 일을 해야 할 ‘4.3평화재단’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제주가 평화의 섬이 맞다면, 있어서는 안 될 일들로 시끄럽게 굴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초대 이사장 선출을 둘러싸고 이전투구(泥田鬪狗)만 벌였다.
오죽했으면 양보도, 협상도 없이 집안싸움만 벌이다가 끝내 관선(官選) 이사장을 탄생시키는 파행을 낳았겠는가.
4.3원혼들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사람들마저 이 정도다.
최근 제주상공회의소 회장 선거 때도 그랬다.
후보자들끼리 티격태격 하면서 법정싸움까지 벌이는 바람에 선거 시기를 놓지는, 전국에서도 유례가 없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말았었다.
3
현재진행형인 제주대학 총장 임명 문제와 도지사 주민 소환 문제는 또 어떤가.
직선에 의해 제1순위로 추천된 후보자가 투서질 때문에 교과부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니 제주가 평화의 섬이라면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다.
그것도 백보 양보해서 1순위 후보에게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견책감에 불과하다.
결국 뒷구멍 투서질이 발단인 것 같은 데 평화의 섬 주민의 행위치고는 창피하기 짝이 없다.
도지사 주민 소환에 이르면 그 하고많은 평화의 섬 갈등 중 절정이다.
아마도 가부간(可否間)에 지사 주민소환 문제가 끝나면 옳고 그름은 극명하게 결론이 날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그 상처는 사람들의 상처로서가 아니라 ‘평화의 섬의 역사적 상처’로 오래 남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지사 주민 소환은 평화의 섬 이미지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다.
제주도의 갈등과 분열, 모함과 비 포용성은 이제 극에 달한 느낌이다.
4.3평화 재단 이사장, 제주상공회의소 회장, 제주대학 총장 등 주요 선거를 치를 때마다 평화의 섬은 비평화의 섬이 되고 있다.
지사 주민 소환 문제도 다르지 않다.
더 걱정은 내년 지방선거와 다음의 국회의원 선거다.
이 양대 선거를 놓고 이미 찢어진 제주도를 또 몇 조각으로 더 찢어 놓을지 암담하다.
정녕 제주도를 평화의 섬이라고 입에 올리려거든 진짜 평화의 섬을 만든 다음에 하라.
아직 제주에는 진정한 평화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