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협력 중대사, 한 단체에 일임은 잘못"
"남북협력 중대사, 한 단체에 일임은 잘못"
  • 고창일 기자
  • 승인 2004.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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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도민성금 취지 '지자체 예산할당'으로 전락

남북협력과 '평화의 섬'으로서 제 역할 등 명분은 나무랄 데 없지만 추진 모습이 볼 상 사납다.
'북한 감귤 보내기 운동'을 바라보는 도민들의 시각이다.

1999년 제주기독교교회협의회 및 개신교 각 단체 중심으로 추진된 '북한 감귤 보내기'사업이 해를 거듭할수록 본색을 잃고 있다.
자발적인 도민 성금 등으로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북한 동포를 돕자'라는 순수한 취지가 '때가 되면 얼마씩 내 놓아야 한다'는 반강제적 의례로 전락해 버렸다는 분석이다.

2001년 대북지원사업자 승인을 받아 설립돼 이 사업을 맡고 있는 (사)남북협력제주도민운동본부의 직원은 단 1명.
제주도산 농.축.수산물을 북한동포에게 지원하는 사업을 비롯 남북한 학술.문화.예술.관광 등 제반 분야의 교류사업, 통일문제에 관한 연구.조사 및 학술대회 개최라는 설립목적을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운동본부의 주요사업을 보면 감귤. 당근 북한보내기, 제주도민 북한 방문, 한라-백두 교류 협력, 통일문제에 관한 학술대회 등이다.
결국 간판만 내걸고 이에 소요되는 자금이나 인력 등은 제주도 등 지자체, 농협, 참여 기관.단체 등에 기대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도민들은 "남북협력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대표성이 없는 한 단체에 일임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전제 한 뒤 "운동본부가 그 동안 물꼬를 트는 공헌을 했다면 이제는 이를 전 도민 차원으로 승화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특히 도민 세금으로 이뤄진 지방비가 공식적으로 매년 투입되는 점을 감안, 도민전체의 활발한 토의와 사업참여가 고려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감귤보내기 실적과 재원은
1998년산 100t을 보내는 데 소요된 1억6400만원은 전액 제주도의 감귤류수입판매기금으로 해결했다.
다음해인 1999년산부터는 물량이 급증했다.

4336t 13억6700만원 규모로 도비 1억3000만원, 감귤류수입판매기금 9억5600만원 등과 도민들의 성금 및 물품 2억8100만원으로 마련했다.
2000년산 보내기 사업은 당근도 더 해졌다.

감귤 3031t, 8억4400만원 및 당근 2000t, 5억7500만원 등 5031t 14억1900만원.
감귤은 도비 2억9900만여원, 감협에서 물품 3억300여만원을 성금으로 내놓고 시.군 등에서 성금으로 준비한 2억4000여만원으로 해결했다.
당근은 도비 1억7500만원, 군비 4억원을 들였다.

운동본부가 발족한 2001년산은 지방비 ,기금,성금.품을 합쳐 41억2200만원 1만105t규모.
이 중 감귤 6105t. 23억5800만원은 국비 15억1500만여원을 지원 받은 데다 남북협력기금 및 도비 1억1000만원, 시.군과 각급 단체 성금 1억여원으로 채웠다.

당근 4000t.17억6400만원은 도비.군비 각 6억원에다 남북협력기금이 합쳐졌다.
지방비 예산으로 잡히기 시작한 2002년산은 4000t.10억2000만원으로 도비 2억5800만원, 시.군비 1억5000만원, 시.군 성금 7000만원이다.
2003년산은 7500t 21억3100만원으로 도 3억5300만원, 시.군 3억5300만원, 성금 6000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사업시작이후 이 사업에 들인 102억3900만원 대부분은 지방비이거나 감귤류수입판매기금, 시.군 등에서 모은 성금 등이 차지하고 있어 도민들의 자발적 협조와는 거리가 멀다.

올해 추진계획을 보면 (사)남북협력제주도민운동본부 주관으로 제주도, 농협지역본부, 운동본부 참여 기관.단체 등 협조 아래 사업량은 운동본부와 협의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지자체 예산 관례화 정당한가
사업을 시작하는 당시에는 북한의 참상이 외부로 알려지던 때로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도와야 한다'는 공감대와 '과잉 생산된 감귤처리'가 궤적을 같이 했다.

당시에도 '보내려면 식량이 될 만한 것을 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간간이 터져 나온 가운데 제주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감귤로 최종 결정됐다.
이후 남북협력기금이 사업자금 구성에 빠져나가면서 지자체의 성금, 도민들의 협조 등으로 꾸리게 됐다.

2002년부터는 정식 예산으로 책정됐고 도가 50%, 4개 지자체가 인구수 및 생산물량을 감안 적정하게 나누고 있다.
도내 한 지자체의 관계자는 "경제 살리기 재원도 부족한 마당에 예산에 반영하려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반면 명분에 눌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도민들은 "마지못해 지원해 주는 모습으로 변질해 가고 있다"면서 "순수한 차원이나 교육적 차원으로 당초 취지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이 사업을 공론에 붙여 도민들의 합의와 활발한 참여 속에 진행시켜야 한다"며 "운동본부 중심으로 돼 있는 사업 진행을 도내 각 관련 단체들이 참가하는 협의체를 구성, 필요시마다 한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면서도 눈치본다
북한 감귤 보내기는 일방적으로 베푸는 입장이 아니다.
물론 '같은 동포를 도우면서 생색을 내면 되겠느냐'는 당위성에는 할 말을 잃지만 남.북한의 경제체제가 다른 탓에 이상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먼저 지원 계획량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 등을 통해 지원량을 밝힐 경우 북측은 이를 기정 사실화해 분배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주의 경제구조상 한번 결정되면 확고하게 진행시키는 북한의 구조와 감귤 생산 예상량, 가격 동향 등을 미리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계획을 잡아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남한의 움직임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이에 운동본부나 제주도 등은 당해 연도산을 얼마쯤 보내야 한다는 사전 계획을 세울 수 없다.
예산과 물량을 확정하고 북측에 통보해야 한다.
안 그러면 '약속을 어겼다'는 항의가 쏟아진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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