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노무현 신드롬’
[김덕남 칼럼] ‘노무현 신드롬’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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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최면 걸린 哀悼물결

 연이어지고 있는 추도(追悼)인파가 5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영결식 날 서울은 거대한 장례식장을 방불케 했다. ‘대한민국이 울었다’는 신문표제도 보였다.

 스스로 40m 바위 아래도 몸을 던진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경악할 사건이었다.

안타깝고 아쉽고 여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유난히 눈물과 정이 많은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지도자의 충격적 죽음에 애달파하고 있는 것이다. 공과(功過)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러기에 냉철한 이성적 판단은 설 곳을 잃어 버렸다.

목멘 감성의 눈물만 바다를 이뤘다. 집단 최면에 걸린 듯 애도의 물결은 도도(滔滔)했다. 세계가 놀라워하는 경이(驚異) 적 기록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노랗게 물드는 ‘애도의 멀미’에 취해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집단 우울증에 빠져 있을 수도 없다. 집단 히스테리는 더욱 곤란하다.

 이제는 그가 내 던진 ‘죽음의 의미’를 냉철하게 짚어볼 때다. 감성적 균형을 갖고 이성적 반응으로 돌아 갈 때다. 감정적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서민적 분식(粉飾)을 해도 그는 이미 질박(質朴)한 자연인은 아니다. 국가최고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공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죽음의 의미는 매우 무거운 역사적 하중(荷重)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꿋꿋하게 견디지 못 했나

 ‘노무현 정치’의 대의명분은 권위주의 타파였다. 지역주의 청산과 고비용 정치 배격이었다.

그리고 깨끗한 도덕성을 자산으로 했다. 솔직하고 털털함은 그의 퍼스넬리티다.

정치적 위기를 수차례나 극복했던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은 그의 장기(長技)라 했다.

 그에 대한 애도의 물결은 이에 대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실상이다. 국가지도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명복을 비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기도 하다. 나무랄 일이 아니다. 동참할 일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의 죽음에 대한 지나친 미화(美化)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냉정을 찾아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자살은 무모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산자여 따르라”고 ‘죽음의 찬가’를 부를 일이 아닌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생명은 경건한 것이다. 내 것이면서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생명의 가치요 소중함이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 이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러기에 그의 죽음은 의롭지가 않다. 아름다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그가 존경받아야 할 국가 지도자였기에 더욱 그렇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면 아무리 절박하고 절망적 상황이었더라도 꿋꿋하게 이겨냈어야 했다.

 존경받아야 할 지도자라면 돌팔매를 맞으면서라도 험한 상황을 극복하는 용기를 보여줬어야 했다.

그것이 가족과 그를 아끼고 존경했던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상황 논리는 변명일 뿐이다. 그를 사랑했지만 그의 죽음에 화나고 아쉬운 사람들의 심정이 그렇다.

정부ㆍ정치권에 엄중 경고

 죽음으로써 도덕적 멍에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죽음은 가족에게 더 없는 슬픔과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찢어버린 것이다.

 한 마디로 그의 죽음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하루아침에 숭배대상으로 추앙받아야 할 가치는 아니다.

 그의 죽음은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지러운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위기의 국가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스스로 죽기를 선택한 영웅적 자살과는 거리가 멀다.

 가족의 뇌물수수혐의 등에 대한 치욕과 좌절을 이기지 못해 선택한 극단적 자기 파괴인 것이다. 도덕성 훼손에 따른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극단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수백만 인파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인격 파탄자‘로 손가락질 받던 그가 하루아침에 존경해 마지않는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의 자살이 불러온 대중심리의 협곡이며 극적인 반전인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인지부조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절망적 시대상황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저항 심리가 수백만 애도의 물결로 표출 된 것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포용력이 없고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과 조폭수준의 여야 정치권에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일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정쇄신을 바라는 민심이 흘리는 눈물인 것이다.

 정부가, 정치권이, 뼈 깎는 반성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노무현 신드롬’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 죽어서 더욱 빛을 발하는‘노무현 죽음의 의미’는 여기서 찾아야 할 일이다.  

김  덕  남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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