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천년의 뿌리 백년의 열매, 제주감귤
[나의 생각] 천년의 뿌리 백년의 열매, 제주감귤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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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은 언제부터 재배되었을까? 재래감귤은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헌상의 기록을 보면, 고려문종 6년(1052년) 탐라에서 세공하는 귤자의 수량을 개정한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기술되어 있다.

개량감귤은 1907년 한말 대신이었던 박영효가 제주에 유배되어 왔을때 도입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1911년 서홍동 출신인 김태진이 일본에서 가지고 와서 재배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확실하게 전해지는 또 다른 경로는 서홍동 천주교회의 신부였던 프랑스 출신 Esmile J, Touguet(한국명 엄탁가)가 제주왕벗꽃나무를 일본에 있는 친구 신부에게 보내주고 그 답례로 받은 것이 첫 도입이라고 보고 있다. 더구나, 그 나무 중 한그루가 아직도 살아있어 그 확실성을 더해준다.

 감귤재배면적은 1950년대까지는 100ha 미만이었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 연두 순시 이후에 감귤주산지조성계획에 힘입어 급속하게 늘어났다. 1975년에는 1만ha, 1996년에는 2만5ha를 넘어섰다.

감귤 역사를 좀더 살펴보면, 도행정기관에서 본격적으로 감귤산업을 총괄 육성하기 시작한 것은 40년전인 1968년부터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단일과일을 담당하는 부서로 감귤과가 신설된 것은 29년전인 1981년이다.
지구촌 시대로 환경 여건이 변하고, UR협상이 타결되면서 고품질 안정생산을 위하여 시작한 감귤원 간벌은 15년이 되었다.

이렇게 감귤의 역사를 짚어보는 것은 무한경쟁시대 감귤에 대해 좀더 깊게 알고 경쟁력을 높여 나간다면, 지피지기는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FTA협상, 농산물수입개방 확대에도 충분히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감귤의 역사를 도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 발간한 “감귤산업발전사”를 기초로 천년의 뿌리 백년의 열매 제주감귤, 영상물을 제작하고 TV를 통하여 방영하고 있다.

이제 농산물 개방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EU FTA 협상이 조만간 타결될 전망이며 한·호주 FTA 협상도 개시되었다. 더구나 올해산 노지감귤은 최대 65만 9천톤에 이를 것으로 생산예상량 관측조사 결과 전망되고 있다.

그 동안의 간벌노력에도 불구하고 적정생산량 58만톤보다 7만 9천톤을 웃돌고 있어 이제 7만 9천톤 감산은 절대절명의 과제로 현실화되었다. 감귤열매가 달리는 지금부터 감귤재배 전농가가 열매따기 실천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감귤역사가 바로서고 제값을 받을 수 있으며 제주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

이제 제주감귤의 긴역사를 간직한 감귤재배 농가들도 자부심과 희망을 갖고 안정적이고 품격높은 감귤생산에 모두가 힘을 모아가면서 제주감귤의 역사를 다시 한번 재보명해 보는 기회기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고  복  수
제주특별자치도 감귤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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