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뭘 하는지? 오래도록 안방에 들어 박혀 나오지 않고 부산을 떨더니 슬며시 나와서는 이봐요 나 어때요? 요즘 초여름 날씨에 맞는 반소매 윗도리와 바지를 새로 입고는 포즈를 잡으면서 뽐낸다. 아내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좋은데! 하고 대답을 했는데, 다시 방으로 들어가더니 다른 상의를 입고 나와서 이건 어때? 그건 더 멋있는데! 대답하면서도 기분은 아주 좋았다. 우리 나이에도 젊음을 붙잡으려는 기운으로 생각되어서 좋았다.
이번 서울 갔다 올 때 자신의 옷 두벌을 세일하는 아울렛(할인)매점에서 샀다는 것이다.
아내는 정기적으로 서울 병원에 검진 받으러 다닌다.
병원에 갔다 오면서 샀는데 병원비도 들고 교통비도 드는데 미안해서 그날은 옷을 샀다고 나에게 차마 말할 수 없어서 말을 아니 했는데 오늘 입어 보니까 정말 잘 샀다고
부산을 떤다. 옷장을 열어 놓고 이 옷 저 옷 바꿔 입으며 한 시간 이상을 내 앞을 들랑날랑하면서 패션쇼를 연출하는 아내 앞에서 나는 스스로 미안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다.
아주 비싼 옷도 아닌데 이정도 옷을 사고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인데, 이를 게을리 한 나의 잘못이 너무 큰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내가 당연히 아내의 옷 패션에 관심을 줘야 하는 것은 나의 도리다.
그래서 아내가 병원에 다니는 신세가 되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이제까지 모든 가정살림에서 아내를 챙기지 못한 것만 같아서 미안하다. 아니 챙기지 못했다는 말은 위선이다.
나의 편익을 위해서 아내를 희생시켰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괴롭고 한길만 보며 살아온 지난날의 후회된다.
아내는 나와 결혼을 해서 내가 퇴직 할 때까지 나는 정장만 입고 직장생활을 했다.
그 세월, 여름이고 겨울이든 나의 와이셔츠를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하는 일에 신물이 났을 것이다.
나는 새 옷을 입고 기뻐하는 아내를 보면서 허물어져가는 자신의 인생을 그래도 자신을 추스르려는 눈물겨운 몸짓이라고 생각해 본다.
지금 나의 아내는 가정을 위해 그 나이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묶어놓고 우리 가정을 지켜왔다.
그 세월에, 그 좋은 몸매, 그 좋은 젊음은 다 팽개쳤다. 이제는 아내의 몸매와 패션 감각은 어느 누구도 관심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아내는 그 젊은 시절의 매력도, 아름다움도, 젊음의 싱그러움도 가족을 위해 다써버리고, 이제는 청승맞고 초라하게 만 보이는 할머니 길로 가는 것만 남은 것이다.
지금 아내의 깊은 가슴 속에는 항상 메워지지 않은 고독의 빈자리만 있을 것이다. 남편도, 자식도, 형제도 어느 누구도 메워줄 수 없는 빈 자리.......... 이 빈자리는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채워 줄 수 없다. 무슨 좋은 옷을 입혀도,
일류 백화점에서 이름난 디자이너의 옷을 입혀도,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끌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말하자면 누구의 관심도, 눈길도 주지 않는 초라한 고독을 안고 살 수 뿐이 없는 외로운 삶만 남은 아내! 누가 자기가 존재하고 싶은 자리로 가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아무도 없다.
그래도 아내는 서울에서 산 옷 두 벌을 가지고 자신의 빈 마음을 달래고 있다.
아내는 태어나서 엄마의 감시를 받으며 요조숙녀로 자라서 겨우 어른의 문턱에서 나를 위해, 우리가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은 포기하고 아내라는 이름으로 참고 견디어 왔을 것이다.
나와 나의 식구들은 당연히 아내, 엄마는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이라는 착각의 눈으로 짠 그물이 되어 아내를 조였을 것이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가족의 착각의 눈은 더욱 강하게 조여진 결박의 끈으로 아내의 인생을 송두리째 묶어 놓았으리라.
새해 못할 제사 없다는 속담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아내의 의상에 관심을 가지고 싶다.
실력이 없어 아내에 대한 코디네이터(Coordinator)는 할 수 없지만 요즘 흔한 의상 잡지라도 받아야겠다.
그래서 계절에 따라 우리 아내가 즐겨 입을 우먼(Woman)감각의 캐주얼한 새 상품을 볼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지는 여름 저녁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