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수탈된 대지’와 차베스
[세평시평] ‘수탈된 대지’와 차베스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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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버럭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수탈된 대지>)라는 책을 선물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5백년사’라는 부제가 붙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나왔다. 2006년 9월 유엔 총회에서 부시를 맹비난하면서 “어제 악마가 여기 다녀갔다…. 아직 유황 냄새가 진동을 한다”라고 했던 차베스다. 차베스는 오바마에게 “양국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며 “8년 전 이 손으로 부시와 악수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지적인 사람으로, 전임자 부시와는 다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아메리카 역사를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의 착취라는 시각으로 다룬 <수탈된 대지>는 우루과이 출신 언론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1971년 작품이다. 저자는  1973년 우루과이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뒤 이 책 때문에 망명길에 오르기도 했다. 스페인이 남미대륙을 정복한 뒤 500년 동안 계속된 식민지배와 제국주의의 착취를 다룬 작품이다. 미국이 신식민지국가로 중남미 국가들을 지배·착취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오바마는 이 책을 읽고 미국의 약소국 침략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했을까?

 특히 <수탈된 대지>는 라틴아메리카가 왜 가난한 지를 잘 알려준다. 서양의 정복자들이 배를 타고 갔을 때 아스텍, 잉카, 마야 인구는 7천만에서 9천만 사이였다. 그러나 150년 뒤에는 350만으로 줄었다. 기독교를 내세운 백인들은 약소민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반 이상은 서양인이 가져온  전염병 때문에 죽었다. 나머지는 학살과 가혹한 강제노동으로 죽어갔다. 성서를 들고 총을 겨눈 백인들에게 지금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한국인들은 베네수엘라가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른다. 부시 전 미국대통령을 "악마"라고 조롱하고 팔레스타인 침공에 항의해 이스라엘 대사를 추방한 차베스는 아랍 민족들에게 반미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달리  군사쿠데타가 발생하거나 게릴라 운동이 정부를 위협한 적도 없는 나라가 베네수엘라이다. 세계인의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하면서 올해 10년 집권을 맞이한 차베스 대통령의 첫 번째 업적은 무엇보다도 베네수엘라와 자신을 국제적인 이슈메이커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베네수엘라 정치 논쟁의 불똥은 한국에도 튀었다. 보수언론은 차베스를 '급진적 포풀리스트'라고 조롱하며 진보진영을 공격하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차베스를 '미제국주의와 맞장 뜬' 반미의 선봉장으로 찬양했다. 나아가 차베스 정부의 개혁 정책을 "사회주의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주장하며 한국 진보진영이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정치적 대립 뒤에 가려진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지금 차베스가 추진하는 정책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이득을 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난생 처음 대학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비록 비참한 수준이지만 최소한 공중 보건에 접근할 길이 열렸다. 전국에 수천 개의  학교를 세웠는데, 그 학교들은 모든 학생들에게, 집에서 거르는 세끼 식사를 매일 제공한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던 백만 명 가량의 학생들이 새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양당 체제를 항구적으로 파괴하고, 전통적으로 정치에서 소외되어왔던 광범위한 사회영역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차베스가 성공을 향한 야심찬 발걸음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오바마와 차베스의 ‘뜨거운 악수’ 이후,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다시 대사를 파견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하였다. 차베스는 힐러리 국무장관과 대사 파견 문제를 논의했다. 앞서 차베스는 미주기구 베네수엘라 대표부의 로이 차데르톤 대표를 새 미국 대사로 임명했다. 베네수엘라와 미국은 지난해 9월 각각 상대국 대사를 추방한 뒤 새로운 관계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오바마는 긴장된 남북관계의 해법을 위하여도 대안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김  관  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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