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고향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고 불러 가까이 지내는 풍습이 있다.’
제주도 방언으로 삼촌이란 주위에 있는 친숙한 어른이란 의미로 뭍에서의 삼촌과는 달리 가족과 친척의 경계를 벗어나 그 밖에 위치한 사람들도 포함하기도 한다.
또한 삼촌이라고 하면 남자 어른을 생각하기 쉬우나 제주에서는 남녀 구분이 없이 사용하는 점이 특이하다.
여느 대도시에서는 ‘순이 아주머니’ 쯤 되는 말이 제주에서는 ‘순이 삼촌’이라는 정겨운 호칭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삼촌은 때로는 엄한 보호자이면서도 살가운 친척이며 견문이 넓은 동네 큰형이면서도 같이 뛰놀 수 있는 친구도 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삼촌은 어느 영역에도 속하지 않으나 부모나 친척, 동네 큰형이나 친구의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특정 대상이 해 줄 수 없는 것들을 받아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부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커다란 잘못이나 친구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곤란한 문제들을 삼촌에게는 스스럼 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제주보호관찰소에서는 보호관찰 청소년들이 제주올레 215km를 삼촌들과 함께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삼춘이영 ?디걷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매월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는 수십 명의 청소년들과 삼촌들이 참가하여 함께 길을 걷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범죄예방위원, 수강명령 강사들로 구성된 삼촌모임이 보호관찰 청소년들과 1 : 1로 올레를 걸으며 이들이 건강하고 희망찬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방황하거나 학교를 중퇴하고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려 밤거리를 헤메는 청소년들에게는 저마다 남에게 털어 놓지 못하는 응어리들이 있을 것이다.
해결되지 못한 응어리들을 가슴에 안은 채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라인 게임에 몰두하거나 폭력, 절도 등 여러 가지 비행을 저지르며 인생을 허비하고 마는 것이다.
올레를 함께 걷는 삼촌들처럼 때로는 부모처럼, 때로는 선배처럼 혹은 친구처럼 이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고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 준다면 아이들의 미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한 위기청소년들도 삼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에는 발을 맞추고 다음에는 마음을 맞추면서 아름다운 올레를 함께 걷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 속 응어리들이 길 뒤쪽으로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햇살이 뜨거운 어느 여름 쯤, 이 청소년들이 제주올레 215km를 모두 걷고 나서 얻게 될 행복한 자신감은 억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함 윤 석
제주보호관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