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법인가
왜 법인가
  • 강정홍 논설위원
  • 승인 200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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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과연 법은 만능인가.
‘법의 지배’가 ‘모든 것을 법으로’라는 법만능주의로 이해되는 한, 법은 정의와 동떨어진 위압의 수단이 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법의 그물 속에서 고통받는 초라한 존재로 전락했는지 모른다.

법이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지, 국가가 개인을 억누르는 수단이 아니다. 법은 원래 ‘자유로운 인간’을 전제한다. 이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한, 법은 최대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법이 만약 별다른 이유 없이, 이 자유의 영역을 침범한다면, 그 법은 악법이다. 누군가 악법도 법이라고 했지만, 악법은 이미 법이 아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자유 향유에 대한 자연권을 막는다. “법은 국민의 무해한 자유를 제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격정 무사려 우둔 등과 같은 감성적 속성 때문에 빠지게 될 위험과 피해를 미리 막아 주는데 목적이 있다”는 홉스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

경계해야 할 ‘정의의 독선’

그러나 전통적인 법의 생명은 강제력이다. 바로 힘이다. ‘체제 유지’라는 법의 탄생과정에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인간의 갈등을 지배 조정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질서 있게 형성할 수 있는 작용력이 있어야 한다. 법은 이때 개인의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정한 규범을 제시한다. 이러한 규범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법의 힘은 항상 작용하는 힘이 아니다. 뒤에 숨어 있는 능력일 뿐이다. 그것도 인간의 정신적 문화적 범주에 속하는 것이지, 자연적 집단에 현존하는 물리적 힘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지배자의 자의나 강자의 역할을 배제한 질서 있는 힘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법을 다루는 사람은 성숙해야 한다. 법이 단순한 사고(思考)의 과정이 아니라, 사고의 결과를 현실에 적용한 결과인 이상,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나, 법을 현실에 적용하는 사람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정의의 독선’이다. 법은 정의의 실현을 위해 힘을 과시하지만, 그것에는 항상 현실의 제약이 따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힘은 절대적으로 몰락하듯이, 절대적인 정의는 절대적으로 전락한다.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계획된 사회발전의 도구로서 법을 이용하는 것은 보편화된 현상이다. 그러나 법을 통한 사회발전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태도는 마땅히 경계돼야 한다. 법이 적용될 사회구성원의 가치관과 법규정 사이에 간격이 있을 경우, 그 법은 오히려 사회발전을 저해한다.

물론 법은 비전을 담아야 한다. 비록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제도를 대변한다고 하더라도, 미래를 위한 발전적 동인을 갖추지 못한 법은 진정한 의미의 법이 될 수 없다. 법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여건에 상응해야 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그 현실적 여건을 이끌고 나갈 일정한 가치의 실현을 항상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현실 상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법의 출발점은 현실이다. 새로운 가치에 관한 논의는 그 가치를 현실의 토대 위에 어떻게 새로운 제도로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4대 법안’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사회적 합의’다. 법은 언제나 제도화라는 사회현상이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제도는 사회 구성원 다수가 합의한 약속이지 않던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가치가 법이라는 제도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사회적 합의’를 도외시한 법은 나쁜 법이다. 아무리 법의 제정에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맹목이다. 그리고 독선이다.
공허한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법이 옳은 법이기를 소망하는 한, 나는 그것이 바로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실한 약속’이라는 말에 주저없이 동의한다.
법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야 할 오늘의 현실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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