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라산 봄은 먼데, 오름 바람은 차거워/ 4월 3일 생각이 났는지, 동백꽃도 지었다/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당신, 잊을 수 없는 원한도/ 누구에게도 말 못할 슬픔이여, 그래도 제주는 나의 고향/ 돌하르방 돌하르방 눈물을 참고/ 우리들을 우리들을 보살펴 주세요’
‘한라산’ 노래가사는 지난 4·3전야제례 때 한 일본인이 불러 유족들의 박수를 크게 받았다. 제주4·3을 일본 전역에 알리고 평화운동을 전개하는 ‘제주 4·3을 배우고 행동하는 모임 한라산회’의 회장 유타카 우미세토 씨가 작곡하고, 재일동포 김인배의 번역문이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한라산회’는 지난 1월 결성되었으며, 현재 회원은 120여명이다. 특히 제주가 아름다운 섬이지만 4·3이라는 아픔을 갖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한라산’과 강제징용으로 오키나와에 끌려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할머니의 슬픔을 담은 ‘도라지’ 등을 앨범으로 제작, 일본 전역에 알리고 있다. 오키나와 뿐만 아니라 동경, 오사카 등 일본 곳곳에서 4·3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며, 제주와 일본을 연결하는 평화 교류의 물꼬를 트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는 포부도 밝히고 있다. 이번 제주를 찾은 회원은 40여명이며, 작년에는 오키나와에 현기영·김석범 선생을 초청해 문학 강연도 들었다.
우리는 여기서 오키나와전을 기억할 필요를 느낀다. 오키나와전은 4·3과 마찬가지로 아픈 기억을 공유한 사건이다. 1944년 7월부터 일본은 천황을 보호하기 위해 시간을 번다는 전략으로, 전쟁에 방해가 된다며 어린이, 여자, 노인을 규수로 보내려고 ‘쓰시마마루’에 태우기 시작했지만, 결국 미군의 공격으로 침몰하고 만다. 10월 10일 다시 미군이 착륙하면서 오키나와는 전쟁터로 변했으며, 주민들이 집단으로 자결하기에 이른다. 주민들의 자결은 미군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일본군의 명령인 ‘미군에게 포로가 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많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경험했지만, 일본 군대가 일본 국민을 지켰는지는 오키나와전이 잘 설명하고 있다.. 많은 주민이 일본군의 손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다. 당시 오키나와 인구 50만 명 중 약 20만 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한라산회는 이 사건에 대하여 그 부당성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최근 보수우익세력들의 4·3왜곡과 관련해 일본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라산회’는 미군정 하에서 부당함에 항거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제주사람들의 용기를 높이 산다고 했다. 아직도 그 억울함이 모두 해소되지 않고 있어 그들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은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광주 5·18을 경험한 ‘오월어머니회’, 제주4·3유족회, 여순사건 가족 등 한국현대사에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들의 피해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시간도 가졌다. 물론 이 자리에는 ‘제주4·3을 배우고 행동하는 모임 한라산회’ 회원도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한라산회 유타가 우미세토 회장은 "일본에서도 제주 4.3과 유사한 비극이 오카나와에서 일어났다"며 "일본에서는 오키나와와 같은 비극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많은 평화운동가들이 싸우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이러한 활동들이 전개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들은 3일 동안 제주에 머물면서 4.3유적지 등을 돌아본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제 4·3은 유족회 차원에서 국제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전 세계 양심세력과의 연대를 강화하해야 한다. 4·3전야제례 행사장에서 ‘한라산’ 노래 3절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주를 감싸는 신불님께, 마음을 맡기고 살아보자/ 화산의 섬, 돌바위 헤치고, 생명을 맡기고 살아볼까/ 제주도 한라산 봄이 오면 평화의 꽃이 피겠지/ 4월 3일 기도의 노래에 생명의 꽃도 피겠지’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