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 사건 등등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머리에 뿔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사람에게는 원래 뿔이 없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머리에 뿔을 하나씩 달고 다닌다.
돈이 없어서, 화가 나서, 정치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지쳐서 등등 뿔난 사유는 제각각이지만 많은 이들은 뿔을 하나씩 달고 고달프게 살고 있다.
“뿔”의 원조는 TV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주인공 김혜자 탤런트다.
묵묵히 가사노동에 전념했던 전형적인 현모양처 김혜자의 반란이 있고나서 식구들은 새삼 반성한다.
“우리가 엄마를 너무 몰랐구나.” 하며 엄마의 숨통을 조여 왔던 자신들을 반성하고 후회한다.
이 연속극의 주인공 김혜자 탤런트의 뿔이 삶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바이러스로 전염 되는 요즘이다.
모두가 삶의 고달프고, 지치고 힘들 때면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것은 아낌없이 나눠 주고 받는 정(情)이다.
어렵고, 마음의 춥고, 혼란스러울 때는 단순하고 우직한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렇게 어려울 때는 지난번에 히트 친 영화“워낭소리”리더십의 그리워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숙명으로 받아드리며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할일을 굳건히 하는 정서는 우리선조들의 리더십이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에게 시집 온 할머니, 한 쪽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에게 소는 그냥 가축이 아니라, 이동 할 수 있는 다리이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기구이자, 무엇보다도 가장 친한 친구이며, 삶의 동반자다.
소의 평균수명은 15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소는 할아버지와 인연을 시작해 30년이나 그 질긴 인연이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몸에도 새벽이면 일어나 소죽을 쑤어 먹이고, 소와 함께 들로 나가 소와 함께 일을 한다.
그런 어느 날 수의사는 소의 수명이 다했다며 일년을 넘기지 못 할 것이라고 최종선고를 내린다.
“워낭소리”는 죽음을 눈앞에 둔 소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너머에는 경건한 삶의 철학을 읽을 수 있었다. 죽기 직전에야 고삐를 풀게 된 소의 마지막 모습이 내내 가슴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렇게 어려울 때 “워낭 소리”의 리더십이 그리워져서다.
우보만리(牛步萬里 소걸음으로 만리 길),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처럼 예리하며 소처럼 우직하게 실천함), 석전경우( 石田耕牛 돌밭을 갈아 옥토로 만드는 소)등등.....
사람은 가끔, 마음을 주지만..... 소는 언제나, 전부를 바친다는 말이 있다.
요즘 지도자들의 리더십은 말로는 진신의 모든 것을 공익을 위해서 다 바친다고 하면서도 한결같이 자신, 자신의 조직, 자신의 계층위한 꼼수를 부린다고 삶에 지친 뿔난 사람들은 생각 할 수 있다.
그래서 “워낭소리” 리더십이 서민들은 그리운 것이다.
이 소와 이 할아버지는 말을 하지 않고 일만 한다.
일은 안 하고 말만하거나, 말 따로 일 따로 인 것은 사회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소와 할아버지는 잔머리를 쓰지 않았다.
추울 때나 더울 때나 한결같이 성실히 일을 한다.
무엇을 안 할까, 무엇을 더 얻을 까 계산하지 않고, 자기가 하여야 할 일을 계속하는 가운데 신뢰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되 남을 공격하지 않았다.
의 주장이 관철 되지 않으면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극렬한 무법천지 일삼는 자들은,. “원낭 소리” 에서 배웠으면 한다.
이 소와 할아버지는 남에게 군림하거나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삶은 서정에 넘친다.
열심히 일하되 그 대가를 권력의 기반으로 삼지 말고, 공치사도 하지 말아야 통치의 힘은 더 강할 수 있는 것이다.
죽도록 일하되, 축은 해 보일 정도의 위치에서 서있을 때 “워낭소리”가 시청자를 감동시키듯 리더십도 전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워낭소리”의 주인공 소와 이 할아버지의 리더십이란 정도(正道)를 가는 지도자, 성실한 지도자, 인내하는 지도자, 겸손한 지도자, 섬기는 지도, 믿을 수 있는 지도자를 말함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