敵國장군들 추앙받는 이순신
‘세번의 파직(罷職)과 두 차례의 백의종군(白衣從軍). 이쯤만으로도 누구를 말하려는지 알 것이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장군이다. 오늘(28일)은 장군이 태어 난지 464돌이 되는 날이다.
“영국의 넬슨은 군신(軍神)이라 할 만한 인물이 못된다. 세계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제독이 있다면 오직 이순신장군 뿐이다. 이순신장군과 비교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도 못된다”
일본의 해군 제독이었던 ‘도고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ㆍ1848~1934)의 말이다. 그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적함대를 궤멸시켰던 세계적 전쟁영웅이다. 8년간 영국에서 넬슨을 연구했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조선의 수군을 지휘했던 이순신 제독”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한 것이다.
또 있다. 역시 일본 해군 소장출신 ‘가와다이사오(川田功ㆍ1883~1931)다. 그는 “이순신장군은 당시 조선에서 유일하게 청렴한 장군이었고 전술전략 운영능력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가 쓴 책 ’포탄을 뚫고‘에서다.
적장(敵將)이었던 인물을 적국의 장수들이 신의 경지로 받들어 추앙한다는 것은 여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이순신 장군의 품위(品位)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절망적 현실 극복하는 정신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이순신장군을 세종대왕과 함께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추앙받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모함으로 인한 온갖 시련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청렴결백.강직.책임감과 애국 충정은 청사(靑史)에 빛나는 장군의 빼어난 가치들이다.
수도까지 버리고 명나라로 도망가려 했던 무능하고 허약한 국왕과 왕권에다 사색당파싸움으로 국가의 근본은 문란했다. 가렴주구(苛斂誅求)와 학정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북쪽 변경에는 오랑캐들이 침탈하여 백성을 괴롭혔다. 남쪽에서는 왜구들의 노략질이 그치지 않았다.
충무공 대의 시대상황이 그랬다.
장군을 모델로 한 소설 ‘칼의 노래’ 작가 ‘김훈’은 ‘인간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절망적 현실을 받아들인 사람’으로 장군을 그렸다.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도 편향되게 흐르거나 휘둘리지 않고 꼿꼿하고 꿋꿋하게 충의를 지켰던 장군의 시대정신은 그래서 전류처럼 역사의 오늘을 감전시키기에 충분한 교훈이다.
부끄럽고 역겨운 시대상황
장군이 살았던 시대상황과 오늘의 그것이 별로 다르지 않아서 하는 소리다.
정치주체들의 당리당략으로 인한 정쟁과 국정유린, 경제위기로 무너지는 나라경제와 서민들의 삶, 넘쳐나는 실업자, 속출하는 자살사건 등등 어느 것 하나 밝은 이야기는 없다.
여기에다 회갑선물로 미화3만불과 다이아몬드가 박힌 1억원짜리 손목시계를 받았던 전직대통령 일족의 600만불 뇌물 스캔들과 12억원 국고 횡령사건 등 국가지도자의 도덕적 해이는 국민정서를 패닉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그런데 권력에 기생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재산이 없고 청렴했으면 그랬겠느냐”고 전직대통령을 ‘생계형 범죄에 연루된 불쌍한 사람’이라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1억원짜리 명품 시계를 선물로 받은 것에 대해서도 ‘본질과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뻔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현실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수 십 억원 뇌물을 받아도 괜찮고 1억원짜리 명품 시계선물도 본질과 관계없으니 시비 말라”는 식의 ‘해괴 논리’가 아닌가.
역겨운 혈전(血栓)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참담한 심정이다.
이렇게 구역질나는 시대상황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살아계셨다면 어떻게 반응했을 것인가.
오늘 세상을 더럽히는 역겨움이 장군의 탄신일을 욕되게 하지 않았는지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뿐이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