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원 스트라이크 아웃'과 '파울볼'
[데스크 칼럼] '원 스트라이크 아웃'과 '파울볼'
  • 임성준
  • 승인 2009.0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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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회는 공무원의 예산 횡령, 뇌물 수수, 업체 결탁 비리 등 공직 부패를 둘러싼 언론보도를 접할 때마다 제주 공직사회는 그나마 깨끗하다고 위안을 삼아왔다.

지역이 좁다보니 공무원과 업자가 뇌물을 주고 받으면 들통나기 쉽상이어서 웬만히 간이 크지 않고서야 공직 비리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 왔다.

공직 비리.부패에서 만큼은 청정하다고 공직사회는 하나의 '제주 고유의 문화'처럼 자부해 왔다.

이 같은 위안은 착각이자 오산이었다.

태풍 재난기금 횡령 사건은 일상화.구조화된 공직 부패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영세민들에게 나눠줘야 할 사회복지예산을 횡령한 다른 지자체 공무원과 크게 다르지 않아 씁쓸하다.

지역 사회에 만연한 연고주의, 온정주의가 오히려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 온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

법원은 지난해 12월과 지난 24일 태풍 '나리'의 피해복구를 위해 지원된 재난관리기금을 가로 챈 혐의로 기소된 읍사무소 공무원 4명에게 최고 징역 1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도민 대다수가 태풍으로 인한 피해복구에 여념이 없을 때 이를 주도해야 할 공무원들이 오히려 재난기금을 편취했다는 점에서 극히 죄질이 불량하고 범행방법이 매우 치밀하고 교묘하며, 조직적인 범행 은폐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중하게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국가를 상대로 주도적으로 사기범행을 저질렀고, 개인적 용도로 기금을 사용한 점에 비춰 그 죄질이 좋지 않아 실형을 면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기죄가 적용된 이들에게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앞서 경찰은 이번 재난관리금 횡령 사건을 조사해 '간 큰' 공무원 16명과 건설업자 12명 등 총 28명을 적발했다.

고위직인 4급부터 말단인 청원경찰에 이르기까지 이들 공무원들이 건설업자와 짜고 빼돌린 재난관리기금은 총 3억4천591만원에 이른다.

이들 공무원들은 횡령한 재난관리기금을 유흥비나 직원 회식비, 전직 공무원 및 마을 유지 등에게 주기 위한 선물 구입비 등으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마치 기술직 공무원들이 서로 담합해 13명의 목숨과 2000억원에 가까운 재산을 앗아 간 사상 최악의 태풍 피해 복구를 '특수'인 양 조직적으로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감출 수 없다.

태풍 '나리'로 인해 당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제주지역의 피해복구비는 1603억원으로 국고보조금은 1256억원이다. 당시 제주도는 지방비 부담분 가운데 90%에 해당하는 특별교부세 278억원을 확보했다며 사상 최대 지원이라고 자랑하듯 홍보했다.

앞으로 재난 재해로 인한 특별교부세를 받을 수 있을런 지 걱정이다.

이번 기금횡령사건은 기금 관리의 총체적 부실과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를 그대로 드러냈다.

제주도는 공직비리가 터질 때마다 강도 높은 공직기강 바로세우기에 나서겠다고 목소리 톤을 높이곤 하지만 청정 지역이라고 자부해 온 제주 공직사회까지 전염된 부패를 쉽게 뿌리 뽑을 수 있을까.

2006년 4개 자치 시.군의 2개 행정시로의 통합으로 행정시의 조직이 커지면서 읍면동 지역은 관리 감독이 못 미치는 '사각지대'에 놓여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읍면 지역은 지역이 좁고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공무원과 업자 간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발전하기 쉬운 특성도 비리 유혹의 늪에 빠지게 하는 점도 없지 않다.

실제 이처럼 상당수의 공무원과 건설업자들이 서로 짜고 재난관리기금을 횡령해도 쉽사리 드러나지 않은 것은 재난관리기금 사업의 집행은 읍.면.동에서 하고, 사업비는 행정시에서 지출하는 이원화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읍.면.동장의 책임의식 부족으로 결재라인에서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행정시도 확인과정 없이 요구한 내용을 그대로 지출해 비리 소지를 방치하는 등 관리에 허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주 공직사회도 부패 고리를 끊어야 한다.

'도덕성'을 자부해 온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이 나랏돈을 빼돌린 혐의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국민들은 씁쓸하게 지켜 보고 있다.

서울시는 사회복지공무원 비리와 관련, 공무원이 공금을 횡령하거나 금품.향응 등을 요구하다 적발될 경우 금액이나 지위에 관계 없이 즉각 퇴출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는 등 비리척결 대책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이번 대책에서 공금 횡령,금품.향응 요구,정기.상습적 수뢰 알선 등으로 적발된 공무원과 직접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100만원 이상의 금품.향응을 받은 공무원에 대해서는 즉각 해임 파면 등 중징계 처분하기로 했다.

또 이들 비위 공무원에 대해서는 형사 고발과 함께 받은 액수의 2~5배에 달하는 부과금도 물릴 방침이다.

그 동안 온정주의에 따른 제식구 감싸기 비판에도 인사권자의 측근은 직위 해제했다가 슬그머니 복귀시키고 사소한 비위는 '스트라이크 아웃'이 아닌 '파울볼'로 처리하는 제주도 인사시스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별자치도 공직자의 재량과 권한이 큰 만큼 사회적 책임도 크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임  성  준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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