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실직한 50대 가장이 집에서 술을 마시다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려고 불렀으나 대답이 없자 아들의 뺨을 때렸다. 이에 아내는 경찰에 신고하면서 법원에 접근 금지신청을 냈다.
지난주에는 어느 대학 졸업반 여학생은 어머니가 자신을 밀치고 자기 손등에 노란색 고무줄을 튕겼다는 이유로 100m이내 접근 금지 신청을 했다. 지난해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딸이 시험을 포기한 채 시간을 허송세월하는 것을 채근하다 벌어진 일이었다.
몇 년 전에는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여성이 “시부모가 50m 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어길 때마다 100만원씩 내개 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 지법에서 승소한 일이 있었다.
가정법원의 발표에 따르면 가족갈등에 따른 접근 금지신청이 2007년에 422건, 작년에는 신청건수가 461건 중 67%인 313건이 집행되었다고 한다.
물론 부부싸움에 대한 가정폭력과 학대를 예방하는 집행도 있었을 테지만 부모에 대한 처분도 늘었다고 한다. 자식이 부모에게 대드는 것으로는 모자라 집밖으로 내쫓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가족의 사랑은 내리 사랑이다. 세상 어느 부모나 자식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포기하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다. 우리네 속담에 자식이 먼저 가면 일생동안 가슴에 묻고 산다고 한다. 부모임종은 자식의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게 자식의 성공과 건강을 위해서는 자신의 건강이나 성공은 포기하는 것을 도리로 여기는 우리들이고 우리조상들이었다.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은 인간만이 아니다 짐승이나 풀도 마찬가지다. 연어나 은어는 산란을 하고 장엄한 죽음을 택한다. 또 풀도 꽃을 피우고 씨를 땅에 뿌린 다음에 자신의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이러 듯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내리사랑으로 일생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인륜을 넘어 천륜이다. 이를 어기는 것은 천륜을 어기는 것이다.
그런데 왜 부모를 외면하고 부모들의 헌신과 사랑을 배반하는 풍조가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의 핵심은 건강만하고 부지런만하면 소박한 삶을 살수 있었던 농업사회에서 경쟁과 스피드가 핵심이 되는 각박한 산업사회로 진입이 가족의 정을 오염시키고 있다.
경제 위기로, 취업 불가능한 실직, 가정의 경제기반상실 등등 크고 작은 균열이 우리 가족들의 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야말로 위험한 커브 길에 서 있다. 이 커브 길에서 내 옆에 있는 부모도 아내도 형도 동생도 자식도 누구도 넘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손을 꼭 잡아야 한다. 가족들의 힘을 합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의 생긴다. 이게 가정 경제학이다.
가족들이 상처 없이, 좌절 없이, 꿈을 잃지 않고 이 어렵고 힘든 시기를 통과하기위해서는 가족 서로간의 손을 꼭 잡아주는 일이다. 그렇게 손을 잡아주며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해 가야한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가족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정과 온전한 사랑과 배려이다.
그리고 부모나 자식모두가 힘들 때 무조건 기댈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힘들 때 서로의 손을 잡아 줄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무조건 희망을 주는 대상이 아니라 각기 노력을 통해 희망의 관계로 거듭 나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아마도 모든 가족들이 어려움 없이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할 수 있고, 자아(自我)를 실현 할 수 있으며 가족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저마다의 정과 가족의 둥지는 밝을 것이다.
이러한 인간다운 가족을 만드는 것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자신에게 내실을 기함과 동시에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을 훌훌 벗어 던지고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유교의 “중용”편에 정명(正名)이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그 이름에 걸 맞는 자격을 갖춘다.”는 것이다. 즉 정명사상은 “뭐뭐답게”라는 말로 풀이된다. “군주는 군주 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君君臣臣 父父子子)"라는 말은 요즘 가족 위기에 꼭 필요한 사자성어 라고 할 수 있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