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조선, 청와대를 '캐무시'했다고?
[세평시평] 조선, 청와대를 '캐무시'했다고?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0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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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방송통신 담당 행정관 2명, 방송통신위원회 과장 1명이 종합유선방송사업체로부터 향응을 제공받고 성매매 혐의를 받고 있어 시끌벅적하다.

향응을 제공한 업체 T는 업체 Q와의 합병을 눈앞에 두고 있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사와 승인 절차를 기다리는 중(심사가 31일 인데 일단 연기됨)이다.

업계에서는 두 업체의 합병은 굳이 로비할 것도 없는 사안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리고 이권과 관련되어 로비할 것이 있으면 방송통신위원회에 하면 되지 청와대 사람을 2명이나 불러낼 필요가 뭐가 있냐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로비할 필요도 없는 일에 청와대가 왜 끼어들어갔나, 왜 그런데서 만나고 그런 데로 2차를 가나? 결국 방송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치면서 방송통신 정책을 담당한 공기관 직원들과 방송 관련 업계 사이에 유착관계와 접대, 로비가 일상적으로 벌어진 정황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사건 연루자들은 모두 사표를 낸 상태인데 방송통신위원회는 전면적인 감사와 탐문 등을 통해 부도덕한 업무처리와 불투명한 미디어 정책 추진을 뜯어 고쳐야 한다.

야당은 "권력집중에 따른 오만과 자만에서 비롯된 것"이라 규탄한다. 대통령과 가장 가깝다는 위원장을 모신 게 이런 구태와 부패의 배경이 되었다면 정말 통탄할 일이다.

한편 청와대 행정관 향응과 성매매 혐의 사건에 대해 보도한 30일 신문들의 제목이다.

한겨레신문 - ‘청와대 행정관 성매매 입건, 정부 도덕성 해이’
경향신문 - ‘청와대 사람들 도덕 불감증’
동아일보 - ‘정부 전체의 도덕성 해이로 비칠 수 있어’

거의 모든 신문이 1면, 2면, 3면에 관련 기사를 실었다. 다만 베를리너판 개편으로 새로 태어난 중앙일보, 13면 1단 단신으로 처리했다.

청와대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인가? 조선일보, 요즘 말로 청와대를 아예 '캐무시', 보도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보도를 안할 수 있냐고 언론계가 고개를 설레설레하자 31일 6면 3단 기사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는...

풀을 치면 뱀이 튀는 '打草驚蛇'

그동안 고 장자연 씨의 문건 속에 접대를 받은 것으로 등장한 인물리스트를 놓고 언론사간 묘한 신경전이 계속돼 왔다. 그것은 신문사주 2명과 인터넷언론사 대표가 1명이 들어가 있기 때문인데, 아직까지 그 인물이 누구냐를 놓고 언론사마다 직접적인 보도를 삼가며 눈치만 살피는 중이다.

사건을 조심스럽게 보도하며 소심한 모습을 보이던 신문사가 갑자기 공격적으로 돌아서 기사를 쏟아내는 곳이 있다. 자체 조사해보니 안심해도 되겠다는 의미.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공격적인 신문도 있다. 아예 근처에도 간 적이 없다는 자신감.

그런데 리스트를 보도하며 절반만 꺼내는 신문, '그 이야기 그만 좀 허지'라며 신경질 내는 신문... 이들은 뭘까?

KBS 가 지난 13일, 처음으로 문건 내용을 보도하고 15일에 KBS가 다시 ‘언론계 유력인사’, 기획사 대표, 드라마 감독, PD 등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16일 아침 신문들은 ‘언론계 유력인사’라 쓰지 않고 ‘신문사 유력인사’로 한 걸음 진일보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인 27일 조선일보는 과감히 ‘모 인터넷 언론사 대표 수사 대상 포함’이라는 제목을 크게 뽑았다. 그러자 인터넷 매체비평 전문지 <미디어스>는 “그동안 조선일보는 리스트를 보도하면서 ‘신문사’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고 있다. 그런데 웬 ‘인터넷언론사 대표’로 치고 나오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조선일보의 27일자 보도에 답해 드디어 29일 <머니투데이>가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편집인 칼럼을 실었다. 제목은 “죽은 여배우에 집착하는 이유”

<… 미소를 짓고 있는 죽은 여배우 사진을 보면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슬퍼하고 애도하는가, 아니면 성적 매력 포인트를 찾는가 … (이후 세계 포르노 산업과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의혹 이야기가 이어진 뒤) … 섹스와 포르노는 세계에서 가장 크면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의 신문과 방송이 죽은 여배우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은 생리상 그들의 고객들이 뭘 원하는지 귀신처럼 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가보면 온통 죽은 여배우로 도배되어 있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서슴없이 인용하고 기사화하고 기사 밑에 이런 저런 사람들의 실명이 댓글로 붙고 메신저 등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격살인이다. 신문과 방송이 이념 갈등 속에 상대방을 공격하는 재료로 죽은 여배우를 활용하고 있다 …> 

상당히 장황하게 써내려간 편집인 칼럼이다. <… 미소를 짓고 있는 죽은 여배우 사진을 보면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슬퍼하고 애도하는가, 아니면 매력 포인트를 찾는가, 그것도 아니면 덮고 싶은 것이 있는가? …> 타초경사(打草驚蛇)라는 말이 있다.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인데,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괜히 풀밭을 두드려 뱀을 건드리지 마라, 다친다", 그리고 <삼십육계>에서는 "풀을 두드려 뱀이 놀라 모습을 드러내게 하라, 숨은 적의 정체를 드러나게 하라"는 의미이다.

장자연 리스트를 둘러싼 이 나라 신문들, 뱀을 쫓아 버리는 것인가? 뱀이 놀라 튀어 나오는 중인가?

변  상  욱
CBS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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