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飼育되는 ‘부패공화국’
왜 돼지를 사육(飼育)하는가. 키운 후 잡아먹기 위해서다.
그러나 돼지는 제가 훗날 잡혀 먹힐지 알지 못한다.
그냥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을 뿐이다.
개를 훈련시킬 때도 먹잇감은 필요하다.
뼈다귀 하나면 사냥개를 길들일 수 있다.
사육당하는 동물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육되는 사람들 이야기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돈에 사육되는 정치인ㆍ판사ㆍ검사ㆍ경찰간부ㆍ고위공직자들이다.
소위 ‘박연차 리스트’에 거론되는 부패스캔들의 주인공들이다.
검찰수사로 속속 드러나는 면면을 보면 아직까지 대한민국이 썩어 문드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음이 희한한 일이다.
온전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곳곳에서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형이나 측근 뿐 아니다.
현직 대통령의 주위에서도 솔솔 구린내가 새어나오고 있다.
세상에 이런 나라도 다 있다니, 대통령 권부에서 국회ㆍ법원ㆍ검찰ㆍ경찰 등 내로라하는 권력기관 공직자들이 이처럼 “앞으로 나란히“하여 한 기업인이 던지는 돈뭉치에 머리 조아리는 나라는 없다.
이들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에서 ‘대한민국은 부패공화국’으로 불린들 어떻게 항변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
문제의 ‘박연차 회장’은 나라의 화폐단위를 1만분의 1로 평가절하하며 갖고 놀았다.
“5천원을 주라”고 하면 ‘5천만원’이 건네졌고 1억원은 1만원으로 평가 절하됐다. “통 크다”고 해야 할지 “오만하다‘고 해야 할지 난감한 일이다.
그런 ‘5천원짜리‘ 그런 ’1만원짜리‘ 몇 장씩을 뿌리면서도 스스럼없이 ’그냥 도와주는 것“이라 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기초 경제 이론이 아니더라도 박회장의 ‘대가성 없는 금품제공‘을 곧이 곧 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거짓말 중에도 고약한 거짓말이다.
비즈니스 세계는 원래 “차 한 잔도 의도 없이 사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돈 벌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기업인이 바라는 것 없이 몇 천만원, 몇 억원씩을 던졌다면 누가 고개를 끄덕일 것인가.
잡아먹기 위해 돼지를 사육하듯, 정치인을 돈으로 사육하는 기업인의 의도는 분명하다. 권력을 방패막이로 삼기위한 의도적 보험가입 성격이 짙다.
사육된 정치인을 수하로 둬 부려먹거나 주구(走狗)로 활용하기 위한 방편이다.
지난 정권의 권력 핵심뿐 아니라 이명박 청와대의 홍보기획관을 지냈던 사람과 여당 중진의원에게까지 금품을 건넸다면 ‘아무런 사심 없이 그냥 주고 싶어 준 돈’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박연차 리스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부패경보’일 수도 있다.
흔들림 없는 검찰권 행사 기대
그렇기 때문에 ‘집권 2년차 이명박 정부’는 ‘박연차 리스트’를 권력 내부의 부패척결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측근 사람들과 한나라당 중진의원들이 이미 비리에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부패바이러스는 상당히 깊숙이 번졌을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뼈를 발리는 심정으로 부패 고리를 골라내지 못한다면 이명박 정부 역시 역대 정권 못지않은 참담한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려운 경제 등등을 이유로 어물쩍 넘길 일은 더욱 아닌 것이다.
이 같은 정권차원의 부패 척결 의지에 관계없이 ‘박연차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검찰의 역할과 책임이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정권 때보다 막중하다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1992년 이탈리아 젊은 검사들이 ‘깨끗한 손’을 뜻하는 ‘마니 폴리테(mani pulite)'를 선언하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와 법 집행으로 수사대상에 오른 유력정치인 1500여명이 체포돼 고질적인 정치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었던 사건이다.
이번 검찰 수사도 이 같은 강력한 의지와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국 정치권력의 부패 고리 척결에 새로운 역사가 쓰여 질 것이다.
흔들림 없는 검찰권 행사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찰의 손에 달렸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 똑같이 ‘사육되는 검찰’이라는 비난의 통속에 갇힐 것이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