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평범한 한마디의 매력(魅力)
[세평시평] 평범한 한마디의 매력(魅力)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0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며칠 전 제주공항에서 택시를 탔다.

단거리 택시 승차 줄에서 승차를 해서 시내로 가자고 말했으나 단거리라서 그런지, 하루의 고단함 때문인지 기사님은 대답이 없다.

적마감이 감도는 택시 안 정체에 그나마 숨통을 내주는 것은 라디오 소리였다.

무슨 프로그램인지도 모른 채, 택시안의 적막함이 지겨워서 나는 별생각 없이 방송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싱그러운 목소리의 여자 아나운서가 초대 손님인 듯한 자에게 질문을 했다.

“형사님이시니까, 조직 포력배 나 흉악범들과도 많이 대치하실 텐데, 무섭지 않으세요?” 형사가 투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섭지요, 만날 싸움질만 하던 놈들인데,” 솔직한 답변을 한다.

그 대답을 한 형사의 말이  세련되지 못하면서도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있는 그대로 솔직한 분 같아서 이웃집 젊은 친구 같아서 내심 감탄했다.

“에이 무섭긴요, 늘 있는 일인데요”라고 대답 했다면 나는 그런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여자아나운서가 되물었다. “그래서 무서울 땐 어떻게 하세요?” 

“그래도 잡아야죠, 뭐 형사인데 도망갈 수는 없으니까요” 하고 대답한다.

절대 우문(愚問)도 아니다. 그리고 대답은 현답(賢答)임에는 틀림 틀림없었다.

형사의 우직하고 투박한 목소리가 그의 평이하고 솔직한 답변 넘어 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우리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말을 하면 공자 말씀 하고 있네, 하고 웃는다.

논어 학이(學而)편 첫 장에 나오는 공자님의 말이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말이다.

그러나 이 평범한 말이 너머에는 세상진리가 분명히 있다.

며칠 전 택시 안에서 우연히 들은 한 토막의 평범한 말 한마디는 나의 뇌리 깊숙이 각인되어 오늘도 나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요즘 경제도 바닥을 치고 인정의 각박함을 느낀다.

그래서 일에 부치고 삶의 버거움을 느낄 때면, 세상사가 정말 녹록하게 사는 것이 쉽지 않아 두려움이 엄습 할 때면, 그 택시 안에서 들은 말의  매력으로 살아가고 싶어진다.

삶의 지겹고, 고루해도, 두렵고 고통스러워도, 내가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대 명분이 있는 한, 절대로 도망쳐서는 안 될 일이 있는 거라고, 말이다.

요즘 전 세계적인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자기 책임의식, 이니, 소명의식이니 하는 컨셉들이  거의 사라져 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제 할일을 제 할 일로 알고 도망가지 않은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다.

농부들은 세계화 파고에 힘겹고, 고단해도 농사를 짓고, 형사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범죄자를 잡기 때문에, 결함 많은 세상이지만 돌아가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라디오에서 인터뷰한 그 형사의 대답은 덜 세련되었지만 믿음의 표본이었다.

공자의 말씀이다. 아주 세련되고 기교 있는 말이라면, 나는 신뢰에 인색  했을 것이다. 

나의 괴팍한 성격 탓인지 모르지만 연설이나 MC들의 행사 진행은 너무 세련되고 천편일률적인 것보다는 좀 서툴고, 실수 가있어야 신선감이 있고. 믿음이 생긴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은 연설 시에 “멍청한” 실수를 잘하기로 유명했다.

 연설문을 읽다가 “다음페이지로”라고 쓰인 시나리오까지 읽어 청취자들이 폭소를 터지게 만들었다.

주례라디오 연설을 할 때 한번은 방송이 시작된 것을 모르고 소련에 폭격 할 것이라고 유머적(humor)인 엉뚱한 말을 해서 참모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들었던 때도 있었다. 

그 후 레이건은 연설 감각이 없다는 평이 따라 붙은 대통령이 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음 대통령 시에 평가는 사뭇 달랐다.

대본을 보는데  익숙한 배우 출신 대통령이 지문(sensor)까지 읽는 실수를 했을 리는 없다는 것이다. 

 청취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아마추어 스피치(speecher)의 강조하기 위한 유머전략이라는 평가다.

평범한 말의 위력은 대단하다. 사회를 따듯하게도 만들고 냉혹한 어두운 사회도 만드는 매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김  찬  집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