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시인 고은과 제주도
[세평시평] 시인 고은과 제주도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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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이 되면 고은 시인은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오르고, 그의 집 앞은 기자들로 북적거린다.

벌써 3년째다. 그런 그가 1963년에 제주에 와서 4년여를 살다갔다.

허무주의에 빠졌던 그가 자살할 목적으로, 자신을 수장시킬 큰 돌과 로프를 가방 속에 넣어 배에 타고, 거기서 술에 취해 잠든 후 깨어보니 산지항이었다.

그는 어느 제지소에서 구한 국어사전을 달달 외고, 창녀촌에서 하숙을 하며 취한 밤이면 무덤으로 찾아들며 시를 썼다.

 “또다시 나는 새벽마다 무덤에 가야 한다../ 나와 함께 삼나무 묘판(苗板)을 만들고/ 내 세수하는 물과 마실 물을 떠다 주고/ 기꺼이 먼 심부름도 해 준 애의 무덤에 가야 한다./ 무덤은 질투(嫉妬)의 바다가 일어나는 언덕에 있고/ 어제 다친 발을 나는 거기 가서 벗어야 한다./ 내 약속과 돌들이 살아 있기 때문에 새벽 돌길은 매우 험하다./ 그 무덤가에서 벌써 연인(戀人)은 기다린다./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 냥/ 새벽 바다에서 온 바람을 치마에 받고 있다./ 오오 그렇게도 단정한 연인(戀人)아.” - 고은의 ‘새벽 밀회(密會)’ 중에서

 고은은 원명사로 향하면서 많은 무덤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사라봄 공동묘지는 삶과 죽음이 서로 만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에는 4__3 당시 죽임을 당한 무덤들도 있었다. 그는 무덤을 통해 위로받고, 오름 중턱에서 무덤을 만나고, ‘묘지송’이라는 시도 썼다.

 “그대들은 이 세상을 마치고 작은 제일(祭日) 하나를 남겼을 뿐/ 옛날은 이 세상에 없고 그대들이 옛날을 이루고 있다./ 어쩌다, 잘못인지 노랑나비가 낮게 날아가며/ 이 가을 한 무덤 위에서 자꾸만 저 하늘에 뒤가 있다고 일러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그대들은 이 무덤에 있을 뿐 그대 자손은 곧 오리라/”- 고은의 ‘묘지송(墓地頌)’ 중에서

 이처럼 고은은 아름다운 시편들을 쏟아냈다.

<해변의 운문집>과 <제주가집>이라는 2권의 시집이 그 결과이다.

결국 제주생활을 일찍 마감했지만, 시를 쓰고 알콜에 젖은 생활은 계속되었다.

제주생활을 마감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노동자 전태일이 ‘일꾼들도 사람이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몸에 기름을 붓고 태워서 죽었다는 보도를 읽었다.

그것도 그가 술에서 겨우 깨어나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전태일의 자살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숨막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허무주의의 탈을 벗어던졌다.

  “평화가 무엇인지 모르는 곳/ 그곳을 평화라 한다/ 초겨울 남은 잎사귀들 진다/ 퇴근하는 처녀들 종종걸음 친다/ 그곳을 평화라 한다/ 소가 우는 곳/ 누가 잘 모르는 산골짝 꽃다지/ 원추리 꽃 시드는 곳/그곳을 평화라 한다/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곳/ 그곳을 평화라 한다/ 아직도 옛날장이 서는가/ 시끌덤벙 그곳을 평화라 한다/ 굶주림이/ 밥이 무엇인지 모르는 곳/ 그곳을 평화라 한다/ 오늘밤 나는 늦게 들어와/ 밥상 앞에 앉아 있다/ 마음 밍밍해서/ 여보/ __한잔 하자” -고은 의 ‘평화’ 전문

 고은 시인은 2007년 6월 17일 제주평화축제에 초정 받아 시를 낭송하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평화란 말이 없었으면 좋겠다”면서 “평화란 말이 없는 곳이 바로 평화로운 곳”이라며 격한 감정을 쏟아내었다. 아마 제주4__3을 염두에 두고 쏟아낸 말이 아닐까.

 고은 시인은 1999년부터 미국 하버드대 옌칭스쿨과 버클리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아내도 하버드대에서 교환교수로 일했다.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마정리 대림동산에서 부인 이상화(중앙대 영문과 교수) 선생과 더불어 문학에 정열을 쏟고 있다.

그의 아내와의 결혼은 두 사람만의 결혼이 아니라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이 만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다시 10월이 되면 그는 노벨상 후보에 이름이 오를 것이다. 그

러면 독자들은 그에게 노벨상이 안기리라는 기대에 부풀 것이다.

다시 한번 그가 제주도를 위하여 시집 한 권 정도를 쏟아내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밤은 그의 시집 <백두산>을 들춰보면 어떨까?

김  관  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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