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돈의 변명
두 사돈의 변명
  • 김덕남 대기자
  • 승인 2004.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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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돈이 만났다. 공교롭게도 감방 안에서다.
"아니 어찌된 일입니까?" 두 사돈은 깜짝 놀라 연유를 물었다.
한 사돈이 말했다. "아무일도 아닌데 이렇게 억울하게 갇혔습니다".
그가 말하는 사연은 이랬다.

밤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길가에 고삐가 버려져 있기에 주워 집 담벼락에 걸어 뒀는데 나중에 보니 끝에 소가 매 있었고 결국 소도둑으로 몰려 붙잡혀 왔다는 것이다.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사돈께서는 웬일로 이리 되셨습니까?"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말 한마디 못한 것이 죄라면 죄입죠"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
어느 날 저녁 늦게 어느 가게에 들어가 주인 몰래 아무 말 없이 물건을 챙겨 왔는데 도둑누명을 썼다는 것이다.

물건을 갖고 나오면서 "외상"이라고 한마디만 했었더라도 탈이 없었을 텐데 그 한마디를 못했다가 신세가 처량하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0 자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변명'을 이야기 할 때 가끔 인용되는 우스갯소리다.
변명은 잘못을 저질러 놓고 거기서 빠져 나오기 위해 바동거리는 궁여지책이다. 거짓말의 다른 이름이나 다름없다.

'감방의 두 사돈'처럼 변명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도둑질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쳤다해도 촛불을 훔친 도둑질이 용인되지 않는 이치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대개의 사람들은 잘못에 대해서는 우선 변명을 해놓고 보자는 식이다. 우선 거짓말로 국면을 모면하려 든다.
변명은 자기입장에서만 자신을 합리화시키려는 거짓말 논리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없다. 이해시키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변명은 사람관계에서의 믿음을 앗아간다. 갈등과 분열도 따지고 보면 결국 이 같은 변명과 거짓말이 원인이다.

0 지금 우리사회를 찢어발기는 분열현상도 마찬가지다.
수도이전 문제, 국보법 폐지문제, 언론개혁이나 대입제도 관련문제, 사립학교법 개정문제, 나라경제를 보는 시각 등등 제 입장만을 고집하며 첨예하게 대립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입으로만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는 정치꾼들이 자기시각으로만 짜 맞춘 변명과 거짓말이 만든 폐해다.

논의의 공론화 과정이 생략된 채 자기변명으로만 일관하는 사회는 건강하다 할 수가 없다.
더 큰 불신과 갈등을 부채질하여 더 큰 불행을 부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외짝 눈의 편협한 자기만의 시각에서 벗어나 상대도 볼 줄 아는 맑은 두 눈을 가질 수 있도록 시각을 바르게 교정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맑고 밝은 눈은 누가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스스로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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