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국민이 이렇게 맞는 나라 보셨수?
[세평시평] 국민이 이렇게 맞는 나라 보셨수?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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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경찰서장이 시위진압 중에 집단폭행을 당해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순경을 방문, 위로하며 했다는 이야기가 장안에 잠시 풍파를 일으켰다.


영등포 경찰서장의 발언.

"1980년대에는 솔직히 백골단 등이 투입돼 심하게 시민을 진압하고 폭력적인 방법도 동원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누가 그러느냐. 어느 집회를 봐도 경찰이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없다. 차라리 전쟁 상황이라면 마음껏 진압했을텐데 그럴 수 없으니 우리로서도 답답하다. 주말마다 도로를 점거하는 등의 시위 방법은 분명히 잘못됐다"

영등포 서장의 해명.

"주말시위는 폭도 수준이었다. 군사작전이라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경찰작전이라는 것이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 제한적이지 않느냐는 어려움을 토로한 것일 뿐이다"


방패로 찍고ㆍ몽둥이가 등장하고…

거리시위에 나서고 경찰이 진로를 막고 시비가 일고 시민들이 항의하고 경찰이 대응하고 몸으로 부딪히다 색소 뿌리고 물 뿌리고 손발이 오가다 방패로 찍고 몽둥이가 등장하고 결국 과격시위로 가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영등포 서장 말씀마따나 경찰이 먼저 공격하는 것 봤냐 하지만 이건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닌가. 경찰이 시민을 먼저 공격하는 나라 봤나? 시민들이 울분이 있어 시위를 하며 외치고 격렬하게 항의해도 적당히 참아주고, 심한 경우 제재하는 게 경찰이지 보나마나 격렬해질 거 미리 공격해 꺾어 버린다면 그것은 경찰의 적법한 직무집행이 물론 아니다.

한승수 총리 왈 "선진국 중 경찰관이 이렇게 폭행당하는 나라가 어딨냐"고 말씀했다지만 '국민이 이렇게 경찰한테 맞는 나라도 찾기가 쉬운 건 아닐 것'이외다.

 전쟁은 극히 예외적인 집단광기 아니다 그건 아니다

 사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이것은 아니다. 영등포 서장님 말씀, "전쟁상황이라면 마음껏 진압했을 텐데…." 그 말에 담긴 시대적 의미를 생각하려고 한다.

한 시대가 혼란스럽고 살기 어려워질 때 국가가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사회 전체를 몰아가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집단적 변화를 겪는다. 대개의 경우 등장하는 변화는 서로 같은 처지인 동료 시민을 대하는 태도이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구분한다. 누구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누구한테는 쳐들고 누구에게는 물러서고 누구는 눌러버린다.

이런 식으로 서로가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의 시민 대 시민으로 놓이는 걸 거부하고 누르느냐 굽히느냐, 적이냐 우군이냐를 구별하는데 열중한다고 한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그 시대인의 집단적 광기를 파헤친 일본 학자 '노다 마사아키'는 그의 전서 <전쟁과 인간>에서 그때의 시대정신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근대화를 서둘렀으며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의 공격성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그런 까닭에 모두들 기본적으로 심기가 편치 않았다.

사람들의 기분은 변하기 쉽고 권위적으로 바뀌었다. 공격할 대상을 찾았고 늘 자극적이기 십상이었다.

지위와 기증, 신분, 성 등에 따라서 우월감이 아니면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다.

누구 앞에서 겸손하고 누구에게는 위압적이 될 것인지, 누구에게는 관대할 것인지 생각하며 늘 몸을 도사리고들 있었다.

타자와 대등한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끊임없는 이같은 긴장을 시대의 미덕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일본의 그 집단적 광기가 한반도의 우리에게까지 미친 대표적인 것이 전쟁과 학살, 강제징병과 징용이었다. 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지극히 예외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쟁을 예외이자 사라져야 할 것으로 고민하는 걸 중단하고 전쟁을 일반화시킨다.

남의 나라를 짓밟는 것은 인류로서 얼마나 큰 죄악인가 고민하지 않고 전쟁 상황에서 우리에게 유리하다, 우리가 이겼다로 쉽게 정당성을 얻는다.

아무 죄없는 양민을 징용으로, 정신대로, 위안부로, 총알받이로 끌고 가지만 전쟁이 일반화된 상태에서 그런 것은 전쟁 중 당연히 벌어지는 일반적인 일로 치부한다.

개개인의 인권이 어떻게 파괴되고 그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 작전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각 얼마나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따지지 않는다.

전쟁도 예외가 아니고 전쟁범죄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집단의 행위 속에 함몰시키며 책임소재를 애매하게 흐려놓는다. '내가 한 게 아니라 시대가 저지른 비극이고 국가가 동원한 것이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라고 변명한다.

전쟁은 극히 광기 어린 예외이며 경찰작전에 의해 시민이 여럿 숨지는 것도 극히 예외적인 있어서는 안 될 참사이다.

시민이 경찰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예외를 예외로 인정하지 않고 책임도 흐지부지 넘기는 공권력에 대해 실망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시민마저 눈이 충혈되어가는 오늘의 우리 사회의 모습은 정말 안타깝다.

'평화는 이성에 의해 유지된다. 평화를 지키려면 먼저 느껴야 한다. 상처를 상처로, 경악해야 할 때 경약해야 한다.

그리고 차가운 이성으로 '본래 다 그런 거지 뭐'가 아니라 하나 하나의 사건이 갖는 의미와 책임 있는 모두, 나의 책임까지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저항하고 소리치는 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공권력이 이러면 안된다 외칠 때 외치고 시위에 나서도 폭력은 안된다.

우리 사회가 함께 파멸로 빠지는 길이다 스스로에게 외치고 집단적인 흥분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글을 마주쳐도 의견만 낼뿐 욕하고 인신공격을 가하고 해선 안된다.

그도 나와 대등한 동료시민임을 한시도 잊으면 안된다. 안 그러면 집단적인 분노와 흥분에서 전쟁의 광기 쪽으로 자꾸 다가서는 것일 뿐이다.

정부는 '왜들 이렇게 안 도와주냐' 하지 말고 이것을 풀어야 한다.

풀 수 있는 힘을 공권력이 먼저 갖고 있지 않는가. 전쟁이 아니어서 답답하다니, 국민을 상대로 작전하기 불편해 답답하다니…. 아니다 그건 아니다.

변  상  욱
CBS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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