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시간은 자신의 운명을 누릴 수 있는 기간과 동일한 수량이다.
아름다운 촛불의 몸체가 타들어가는 것과 같이 항상 자신의 나이와 같이 소비된다.
조금의 에누리도 없다.
그래서시간은 다시 거슬러 오르지 못할 물살이 되어 흘러가 버리고 만다.
해가 바뀔 때마다 가슴이 부풀고 희망에 찬 것이 아니라 허무하고 나이 먹는 것이 두려워지며 내 인생에 배급받는 시간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에 허무를 느낀다, 시간은 삶의 질이다.
사람들은 모이면 건강 이야기가 주로 한다.
누가 갑자기 쓰러졌고, 몸에 어디가 이상하면 무슨 병의 증상이고, 어떤 병에는 어떤 약이 좋다는 등 건강이 화제의 중심이 된다.
평소 생활습관에 따라 100 세까지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의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인간평균 100 세의 장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건강관리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건강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시간관리다.
시간은 돈이라고들 말하지만 60세가 넘으면 시간은 돈, 그 이상이다.
시간은 자신의 생명이고, 돈을 주고도 살수 없고 구매가 불가능하다.
나이가 들면 시간의 가치를 느끼기 때문이다.
60이 넘은 자들은 인생의 오후다. 오후는 오전보다 더 길고 다양하다.
문제는 이 장수시대에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고 이 남은 날들을 어떻게 시간을 쓰느냐가 주어진 삶의 숙제이다.
시간은 차별이 없다. 다만 주어진 시간을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자기 스스로의 삶의 시간표를 짜야 하는 어려움과 고민은 자신의 몫이다.
시간은 마치 그릇과 같다.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 되고 죽을 담으면 죽 그릇이 된다.
시간에 담겨진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삶의 의미를 정의했다 .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나치 수용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시간의 활용 이였다.
수용 인들은 가스 처형 실에 들어가기 전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깡통에 넣은 다음 땅에 파묻은 것들이 후일에 발견 되었는데 그 내용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뼈아픈 후회였다고 한다.
시간이 많았을 때는 시간의 가치를 모르다가 죽음의 앞에 서서야 비로소 자신이 시간을 어떻게 낭비 했는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 낭비는 아까워해도 시간낭비는 아까워하지 않는다.
높은 산에 올라가 고산증을 앓아야 산소가 얼마나 귀중한가를 느끼는 것처럼 사람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시간의 가치와 의미를 파악 하게 된다.
시간은 하늘로부터 받은 재산이다.
그 재산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며 삶의 윤택함이 결정 된다. 정신없이 사업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시간의 노예다.
돈 있고 시간 없으면 진짜 부자는 아니다. 돈 있고 시간 있어야 진짜 부자라고 할 수 있다.
분노의 자리를 연민의 자리로 채우고 허욕에서 벗어나 맑은 눈빛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시간, 세상을 조망 하는 지혜와 이해력이 높아지는 시간, 그 시간이 자신의 시간이다. 시간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인생 오후의 시간은, 여행도 하고, 등산도 가고, 취미생활도 하며 기다리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도 가려서 만나야 하고 피곤한 사람들을 피하는 것도 시간의 질적 사용의 한 방법이다.
책도 아무것이나 읽지 말고 좋은 책을 골라서 읽어야 한다.
쓸데없는 모임에 나가 남 헐뜯는데 맞장구치는 것도 시간낭비다.
인생오후의 시간은 무엇보다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
하찮은 일에도 감사하고, 저녁노을에도 감동하고, 캄캄한 밤의 고요에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산다는 것은 배급 받은 시간을 쓰는 것이다.
시간의 비밀을 푸는 것이 현명하게 나이를 먹는 비결이며 영글찬 삶이다.
왜냐하면 시간의 주는 축복을 낭비하지 않는 것은 신의 주문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