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양배추 파동' 농정 혁신 계기돼야
[데스크칼럼]'양배추 파동' 농정 혁신 계기돼야
  • 임성준
  • 승인 2009.0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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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음식점마다 식탁에 단골 밑반찬으로 오르는 양배추를 보면서 시민들마다 때 아닌 '탁상논쟁'을 벌인다.
화제는 행정이 주도하는 양배추 소비 촉진 운동.

'언제까지 과잉생산될 때마다 농산물을 사줘야 하냐'는 볼멘소리가 먼저 터져 나온다.

공무원의 주머니에서부터 기업, 단체의 예산을 털면서 사실상 강매나 다름없는 소비촉진운동만이 능사냐는 것이다.

농가들의 자율 산지폐기 등 자구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게 사실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태풍 등 자연재해가 없어 워낙 생산량이 늘어난데다 한해 농사로 가계를 꾸려나가는 영세농을 생각할 때 '품앗이' 정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제주도 담당 국장은 "강매라는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농민을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며 "과잉생산도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이어서 행정이 모른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림농협이 모든 손실을 떠 안을 것을 감수하고 과잉 생산으로 산지에서 폐기될 처지에 놓인 양배추 전량을 직접 사들여 시장에 판매하는 매취사업은 농민을 살리려는 조합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기엔 충분하다.

경우에 따라 파산 위기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도와 주산지인 제주시 등 행정이 주도하는 소비촉진운동 방법이 문제다.

그야말로 원시적이다.

사실상의 '강매 행정'에 곳곳에서 원성이 자자하다.

제주시가 읍면동 관내 전체 가구수의 50%에 양배추 판매를 추진하는 가운데 각 마을 이사무소와 자생단체 사무실로 연일 트럭째 양배추가 배달되고 있다.

조천읍의 한 마을 이장은 "우리지역 무, 배추 월동채소도 처리난과 함께 가격 하락세를 보이며 농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며 "이런 사정은 나 몰라라 하고 마을마다 할당량을 채워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관공서, 학교, 기업체, 단체, 마을회관, 아파트 주차장, 주유소마다 양배추가 수북이 쌓여 있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어린이집들도 마지못해 대량으로 구입은 했지만 처리를 하지 못해 원생들에게 나눠줄 까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제주시 본청의 경우 각 부서마다 할당량을 정함에 따라 소속 공무원 1인당 30망사씩 떠안고 있다.

게다가 행정에서 양배추 소비촉진 명목으로 농협을 통해 공급하는 가격은 1망사 당 3500원으로 2000~2500원의 시판가격보다 훨씬 비싼 점도 문제다.

복지시설이나 호텔, 음식점 등 실제 소비가 이뤄질 수 있는 곳은 그렇다 치더라도 건설업체와 공사 중인 골프장, 기관단체 등에도 수백에서 수천망사씩 사실상 구매를 강요하고 있어 이들이 양배추 처리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한 업체는 "감귤과 달리 다른 지방에 선물하기 위해 택배로 보낼 수도 없다"며 "몰래 갖다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민주공무원노조제주시지부는 성명을 통해 "공급량 조절을 위한 것이라면, 소비촉진운동이란 미명 아래 공무원과 기관단체.업체 강매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농협에서 산지폐기 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물량이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강매 행정이 제주시 서부지역 민심을 겨냥한 선거용 선심행정이란 오해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주도의회 한 의원은 제주시 업무보고 자리에서 "고등어나 갈치도 풍년이 되면 공무원 봉급을 털어 다 사 줄 것이냐"며 "공사 수주 업체에 강매하고 공무원들의 월급에서 일괄 징수하는 것은 70년대 군사독재시절에나 가능했던 발상으로, 오히려 내년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비꼬아 비판하기도 했다.

올해 대풍작이 예상되는 감귤도 '강매 행정'으로 처리할 것인가.

이번 양배추 파동을 계기로 전체 농산물의 계획생산과 유통혁신, 농가 자구책을 종합적으로 평가, 분석해 농정을 혁신하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

임  성  준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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