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을 남북으로 관통, 하나였던 성을 둘로 쪼개놓은 정의현성이 양분 된지 100년만에 하나가 되는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제주도는 지난해 11월 정의현성 원형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성곽 관통도롤 발굴작업에 착수, 최근 성곽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는 구간 100m 발굴작업을 마무리 했다.
이번에 발굴이 이뤄진 곳은 정의현성 일관헌 앞에서 북쪽(제주시 방향)으로 성
▲한일합병이후 420m '신작로‘
지금까지 기록에 의하면 정의현성은 조선 세종 5년인 서기 1423년 축조와 함께 현청(縣廳)이 설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1910년 한일합방에 따라 일제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1914년 군현제 폐지와 동시에 성 북쪽이 헐리면서 현재와 같은 남북 관통로가 뚫린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정의 현성 남북 관통로는 옛 정의현성 남문 서쪽 30m 지점에서 정북쪽(제주시 방향)으로 뚫렸다.
남북 관통로 길이는 420m에 이른다.
정의현성 남북 관통로 개설은 종전 남문을 주 진출입로로 사용해 온 정의현성의 구조를 일대에 바꿔 버리는 동시에 종전 하나였던 성내(城內) 마을을 ‘동동네’와 ‘섯동네’로 갈라놓았다.
▲정의현성은 원래 3개 門
조선 숙종 28년 서기 1702년 당시 화공 김남길이 그린 탐라순력도 ‘정의강사(旌義講射)’는 정의현성이 남문을 중심으로 동․서문 등 모두 3개 문을 통해 출입이 이뤄졌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가 정의현성 관통로 개설배경 등을 파악하기 위해 국가기록물보관소를 통해 확인 결과 1914년 일제가 만든 ‘세부측량도’에 정의현성 관통로가 기록돼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같은 기록과 성읍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정의현성 관통로는 일제가 개설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일제는 관통로 개설을 통해 외형상으로 주민들의 통행편의을 도모하는 명분을 취하면서 내부적으로 하나 된 현청의 수도(소재재)를 둘로 쪼개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 하듯 일제가 관통로를 개설할 때 당시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이 크게 반발했던 것으로 성읍주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앞으로 신련도 많아
제주도는 1984년 성읍민속마을이 문화재(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188호)로 지정될 당시부터 정의현성 복원의 가장 큰 걸림돌로 관통로 정비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그동안 원형복원의 필요성을 문화재청에 지속적으로 건의했다.
결국 문화재청은 제주도의 건의를 받아들여 올해부터 ‘관통로 정비’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된 것이다.
제주도는 오랜 기간 관통로를 주 도로로 이용해 생활해온 지역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선 현재 폭 6m인 아스팔트 도로를 걷어낸 뒤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폭 4m인 도로로 축소, 정비하기로 했다.
제주도는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장기적으로 관통로를 없애기로 했다.
정태근 제주도문화정책과장은 “우선 올 10월까지 관통로 전 구간에 대한 발굴을 마친 뒤 주민들과 협의, 축소된 관통로를 조성할 계획”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관통로를 없애고 원래의 모습인 남문과 동․서문을 통한 출입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성읍현성이 완전한 옛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통행불편 감수 등 협조가 필수적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내일 90주년 3․1절 기념식
제90주년 3․1절 기념식이 3월 1일 오전 10시 조천읍체육관에서 도내 각급 기관단체장과 광복회원 등 1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8시부터 9시 30분까지 신총․함덕 초등학교~조천만세도안 구간에서는 제17회 만세대행진 및 재현행사가 열린다.
도내 각급 기관단체장 등은 3․1절 기념식에 앞서 조천 만세동산 애국선열추모탑에서 참배를 할 예정이다.
남북 ‘관통로’ 점진적으로 촉소ㆍ폐쇄...발굴작업 본 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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