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같은 감동의 추모행렬
그날 밤 명동에는 눈이 내렸다.
2009년 2월 19일 저녁,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살을 에는 쌀쌀한 영하의 날씨였다. 그런데도 흩날리는 눈발 속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조용하고 엄숙했다.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추기경이 선종(善終)한 16일 저녁 이후, 이 같은 추모인파는 40만 명을 넘어섰다고 했다.
10초 안팎의 짧은 추모를 위해 4시간을 넘게 기다렸던 2km, 3km의 추모행렬.
아무런 불평도 없었다. 그 흔한 실랑이나 끼어들기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노약자에 대한 양보와 서로간의 배려가 따스했다고 했다.
추기경의 죽음은 그래서 이별의 아픔을 뛰어넘어 한파를 녹이는 뜨겁고 진한 감동의 물결이 되었다. 삭막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낸 것이다.
언 가슴을 녹이고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맑고 고운 방울 소리이기도 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영혼의 울림이며 향기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저승길 짧은 며칠이었지만 그러기에 사람들의 마음은 뭉클했다. 감동으로 따뜻했고 감격으로 행복했다.
죄인이든 아니든 관계가 없었다. 가진 자 못가진자도 없었다.
지역과 나이, 계층과 종파, 이념과 정치적 내남도 초월했다.
그러기에 추기경은 떠나고 나서야 더욱 크고 깊게 가슴에 새겨지는 나라의 ‘큰 바위 얼굴’이다.
낮추고 작아지려는 겸손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생전의 말씀이다.
추기경이 ‘큰 바위 얼굴‘로 우리 가슴에 새겨지는 까닭은 이 같은 ’감사‘와 ’사랑‘의 실천 때문이다.
불의한 권력에는 징소리 같은 울림으로 질타했다.
총칼로 국권을 유린하고 장악한 폭압 정권도 추기경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권력의 오만과 부패에는 추상같았다.
가난하고 소외된 힘없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스스로를 “바보‘라고 부르며 낮은 자세로 임했다.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을 대하는 손길과 마음씀씀이는 부드러웠고 따뜻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가끔 불렀다는 가요 ‘애모의 노래’는 하느님을 향한 경외감(敬畏感)이었겠지만 자신을 더욱 낮추고 작아지려는 겸손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기에 추기경이 실천한 ‘감사와 사랑과 용서와 나눔’은 슬픔을 넘어 ‘죽어서도 영원히 다시 사는’ 감동과 희망이 씨앗이나 다름없다.
‘아름다운 죽음’으로까지 이야기 되는 추기경의 세상 하직(下直)은 그래서 오래도록 잊지 못할 ‘사랑 이야기‘가 될 것이다.
번지는 ‘사랑의 바이러스’
외국인 사제 한 분은 “축복이요 축하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국민적 애도(哀悼)가 축복이라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있기에 축하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읽혀지는 게 있다. 언제까지나 슬픔이나 아쉬움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다는 메시지다.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일깨움이다. 깨달아 일어서서 ‘추기경의 남기고 간 사랑’을 실천하자는 뜻일 게다.
그렇게 한다면 추기경도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축복이고 축하해야 할 일이다.
추기경은 ‘사랑의 바이러스’를 이 땅에 뿌리고 갔다. 선종이후 ‘사랑의 장기운동 본부’에 몰려드는 장기기증 신청자가 평소보다 30배나 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의 바이러스’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추기경을 추모하는 글에서 ‘ 벽을 허무는 데 일생을 바치신 분’이라고 했다.
추기경 선종이 이 땅에 아집과 불신과 증오와 탐욕의 벽을 허무는 바이러스가 될 수 있다는 기원이다.
그래야 추기경은 하늘나라에서 ‘빙그레’ 예의 그 바보 같은 천진한 웃음을 보낼 것이다.
지난 한 주는 추기경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찡’하게 벅차올랐고 행복했다. “하늘나라 추기경님, 행복하세요.”
김 덕 남
主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