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국인의 사상을 ‘비빔밥 철학’이라고 말한다. 그 밑바닥에는 토속신앙과 무속신앙이 융합, 그 위에 천여 년에 걸친 불교사상이 얹혀있고, 또 그 위에 오백년간 유교사상이 얹혀있다. 그리고 지금은 기독교 신앙이 그 표면을 덮고 있다. 비빔밥 철학은 김치에도 나타나 있다. 김치는 대지에서 자란 배추로 만든다. 그러나 거기에는 공중에 매달린 고추와 배와 밤 따위가 들었고, 또 땅 속의 무우와 마늘 따위가 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바다의 새우와 고기도 들었다. 산해의 진미를 한곳에 밀어 넣어 만든 것이 김치이다.
이처럼 비빔밥은 합하고 섞는 것이다. 바닥에는 밥이 깔려 있다. 그 위에는 콩나물과 고사리와 오이 무침과 다시마 튀김이 얹혀 있다. 군 김이나 달걀과 고기가 다시마 튀김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산나물과 해초와 날짐승의 알과 쇠고기가 들었으니, 산과 바다와 하늘과 땅의 모든 음식을 한곳에 모아 놓은 셈이다. 지구상에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민족은 우리 민족이 유일하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생전에 자신의 예술 세계를 비빔밥으로 표현하였다. 자신이 거창한 예술을 하는 게 아니라 어릴 때 먹던 비빔밥처럼 마구 섞어 놓은 것뿐이라는 얘기였다. 마이클 잭슨과 귀네스 팰트로, 클린턴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로 비빔밥을 꼽았다. 클린턴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비빔밥이 올라 왔으며, 그는 상추를 쭉쭉 찢어 그릇에 넣더니 수저를 들고 비볐다. 주위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역시 비빔밥은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말까지 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비빔밥을 알고 있었고, 코가 자주 막히는데 그럴 때마다 비빔밥은 특효약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최근 한국의 기업들도 기술 간 융합에서 새로운 실마리를 얻기 시작했다. 바로 비빔밥 학문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다. 방송과 통신이 서로 통하며 방송통신융합미디어를 탄생시키고, 신에너지 개발 기술과 자동차공업이 결합하여 전기나 수소로 움직이는 친환경 자동차를 만들었다. 지식인사회에서 지식의 통합은 해묵은 주제가 되었다. 바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뒤섞고 비비고 흔들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한국인에게 더 쉬운 작업일 것이다.
서울대학교는 기업의 중견 경영진를 대상으로 하는 경영전문대학원 '이그제큐티브(Executive) MBA'를 신설했다. EMBA는 경기도가 수원 광교 테크노벨리에 위치한 차세대융합기술원에 '계약학과' 형태로 설치되었다. 계약학과란 대학에서 학생을 모집하지 않고 기업에서 파견한 학생만을 계약 방식으로 교육하는 학과이다. 특히 EMBA 프로그램은 여러 학문분야를 넘나드는 연구를 지향하는 차세대융합기술원의 이점을 살려, 프로그램을 기술경영, 예술, 문화, 금융, 일반 등으로 특화하여 제공한다. 기술경영 수업에는 공대 산업공학과 및 기술경영경제정책 협동과정 교수들이, 예술 경영 과정에는 음대나 미대 교수들이 참여하는 등 필요에 따라 다양한 전공의 교수들이 함께 전공 수업을 운영한다. 여기에 대학원 코스인 융합기술원이 문을 열어 올해부터 학생을 모집하였다.
모든 재료들을 섞어서 비벼먹는 음식을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우리가 우리 어머니ㆍ우리 아버지ㆍ우리 동생ㆍ우리 집ㆍ우리 학교 등등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으로도 우리 민족은 알게 모르게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한민족의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고구려ㆍ백제와 신라의 역사 속에서 ‘두레’와 같은 공동체 의식을 엿보면 한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살아왔음을 알 수가 있다
비빔밥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게 됐듯이 비빔밥 정치도 글로벌 스탠드화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백남준식의 비빔밥 철학'에서 관객에게 감흥을 주는 비빔밥 정치가 탄생된다는 사실을 깨우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비빔밥은 단순히 잡다한 것을 한곳에 모은 것이 아니다. 비빔이라는 율동적인 작업이 주어짐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맛이 창조된다. 여러 가지의 음식물들을 모아 놓은 것은 사실이다. 한번 비빔밥이 된 뒤에는 그 잡다한 것은 여럿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의 것이 된다. 천지를 한 그릇 속에 모아놓고 비빔으로서 혼돈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혼돈의 세계가 아니라,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이전의 창조적인 혼돈의 세계를 재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혼돈이라기보다는 원활한 융합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여기에 덧붙여 반가운 이야기가 있다. 전주시와 우석대학교가 전주비빔밥을 세계적 브랜드로 발전시키기 위해 최근 '전주비빔밥문화콘텐츠개발'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양측은 전주비빔밥과 관련한 창작동화 및 창작춤을 개발하고, 웰빙 및 다이어트 등 세계인의 기호에 부합하는 비빔밥 브랜드를 개발키로 했다. 또 양측은 비빔밥의 캐릭터인 '비비미'를 활용한 디자인 및 상품 개발 등에도 공동 협력키로 약속했다. 이제 비빔밥이 희망이다. 우리 제주에서 비빔밥 철학을 활용한 아이디어를 찾아낸다면 과연 무엇이 가능할까?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