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연쇄살인 사건과 용산 참사의 충격을 접하면서 사람들의 삶은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하는 경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의식주는 노력만하면 최소한의 것이 확보되어 견딜 수는 있지만은 영혼의 파국은 생명의 모든 것을 파멸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영혼의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은 생활변화가 스피드를 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들의 소지하던 수첩이 핸드폰으로 변했고, 책의 컴퓨터로 변해서 속도전을 유지한다.
소설의 영화, 드라마로 변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요즘 사람들의 트렌드(trend)를 알고 싶을 때, 가장 쉬운 자료는 TV드라마이다.
‘아내의 유혹’ ‘유리의 성’ ‘집으로 가는 길’ 등등이다.
이 인기 드라마들은 바로 현재 우리나라사람들의 영혼 리포트(report)가 된다.
출생의 비밀, 복수, 불륜, 음모와 배신, 신분상승욕망으로 가득 찬 허영, ..... 시청자들은 욕하면서도 보는 삶의 갈데까지 간 콘텐츠다.
이런 드라마는 때때로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우리들에게 충격을 주고 비참하게 만드는 현실의 난장판이나 참사들의 바로 그것이다.
갈데까지 간 삶의 모습은 처절한 저항과 막가는 권력의 두 가지 코드로 대비된다.
각기 다른 집단의 욕망들이 노골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서로 다른 욕망들이 겹치는 드라마는 삶에 대한 불안, 사회에 대한 불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남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우리 옆에는 사람은 없고 자리(직위)와 관계만 있는 사회가 되고 있다.
계급장에 가려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살기 힘들다고 하고, 경제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대중의 간절히 염원하는 것이 이런 것일까?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보릿고개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그때에도 삶의 주변에는 정과 눈물이 있었다.
정말 살기 힘든 것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도, 경제가 힘들어서도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또 우리사회에서 자신의 자랑스러워 할 것이 무엇인지 점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이 먹어서 당뇨병환자가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배고프다고 불평만하는 그런 영혼 상태가 우리들의 현재 모습이다.
요즘 초등학생들도 자주 말하는 진부한 말이지만, 영혼을 지켜야한다고 한다.
이 말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 뿐이며, 또한 자신은 항상 만족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도 소싯적에는 상급학교에 다닐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고, 직장 다닐 때에는 진급경쟁시험에 합격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았고, 수필가가 되기 전에는 등단만 된다면 하고 계속 만족의 단계를 만들고 있었던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영혼을 지키고 여유와 안정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아주 쉬운 일이 수 있다.
이것은 순전히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직위에 올라가야만, 돈을 얼마 모아야만 만족 할 수 있다고 미리스스로 정해놓고 자신의 영혼여유를 혹사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은 우리의 삶에 중요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영혼을 팔수도 없고, 우리 삶의 기본가치나 목적을 버릴 수도 없다.
수단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때, 이것은 욕망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다이어트, 웰빙푸드(wellbeing food)가 대중의 최고관심이 되는 나라에서 여전히 먹고사는 것, 경제운운하면서 돈만 벌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처럼 하는 그런 트렌드는 우리들의 영혼을 위기로 만들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과 혼란은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돈만 되면, 경제만 잘 되면 무엇이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영혼의 문제다.
연쇄 살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갈등 사건이 있을 때마다, 법질서, 다시는 재발 안 되는 법 정비 등등을 운운하면서 단지 자신들의 입장과 욕망을 충족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되돌아 봐야한다.
우리들의 간절히 원하는 것은 돈도 경제도 아닌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대자연의 섭리는 우리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들이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것을 간절히 발랄 때 ,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을 들어 줄 것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