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친절의 의미
[나의 생각] 친절의 의미
  • 제주타임스
  • 승인 200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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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 글 뜻대로 사람(人)과 나와의 사이(間)라는 관계설정에서 人間일 수 가 있다.

서양 사람의 사람과의 사이는 계약에 의해 物理的으로 맺어지는데 비해 한국사람의 사이는 義理人情에 의해 化學的으로 맺어진다.

계약은 매듭처럼 맺기도 잘 하고 풀기도 잘 하지만 의리인정은 아교 같이 한 번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계약은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파기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맺어진 우리의 情은 그리 쉽게 버리지 못한다.

때문에 외국사람은 실리추구에 의한 냉정함과 합리성이 있지만 우리는 끓고 맺음이 분명치 않은 속에서 따뜻함이 깃들여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현대 우리 사회는 이 따뜻한 정마저 메말라 가는 느낌이다.

사실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정답게 살 수 있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이 사회구성이 人間으로 된 이상 주어진 범주 내에서 보다 기분 좋게 산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그런데 요즘의 아교는 가짜가 많아서인지 붙었다가도 쉽게 떨어지는 것이 많아 의리인정도 세월 따라 많이 변색하는 것 같다.

날이 갈수록 인심은 야박해만 가서 입으로만 이웃사랑, 친절을 부르짖을 뿐 이해 관계가 없는 사람에겐 친절이나 情주기가 지나치게 인색한 것이 특히 도시생활에서 일반적 통념이 된 것도 오래이다.

지난 방학 때 모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모교를 찾아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고향을 떠나온 나그네가 반겨줄 사람이 없어도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졸업생에게 모교는 마음의 안식처이다.

無言속에 기쁨과 반가움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石塔은 예나 이제나 새 시대의 창조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그 모습이 당당하여 흐뭇하기만 하였다.

 영하의 기온에 방금 눈송이라도 내려 白花를 꽃피울 것 같은 날씨였지만 마음은 봄처럼 따뜻이 교정을 거닐며 혼자의 대화 속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우리같이 불혹의 나이에 一人三役으로 새 시대에 새 기틀을 구축할 유능한 교육자가 되기 위해 실천적, 응용적인 학문과 새로운 교육 기술의 연마를 한 졸업생에게는 모교에 대한 애착과 긍지가 그 누구보다도 크다고 자부한다.

재학중 어려움은 많았지만 흐뭇하기만 한 옛 추억을 생각하며 은사님들과 우리를 위해 애쓰셨던 직원들에게도 인사를 드릴 겸 교학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학중이라서 그런지 사무실엔 안경 낀 20대 여직원 한 분만이 난로 가에 앉아 있었다.

졸업생임을 밝히고 전에 계시던 분들의 소식을 물었다.

그러나 대답이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기만 하여 실내온도는 난로 때문에 따뜻한데도 냉랭한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무슨 기분이 언짢은 일이 있었는가 보다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건넸다.

 모교에 온 김에 우리 지역의 동문들 모임 체에 책임도 맡고 있어 우리지역에서 금년에 모교에 합격한 분들이 몇이나 되는지 물어 보았다.

우리는 매년 모교에 새로 합격한 분들의 환영을 해 주고 있다.

 합격자 발표는 몇 일전에 있었기 때문에 발표된 명단을 보여주는 것은 특별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주 못마땅한 귀찮은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한참 바쁜 업무를 보는 때 협조를 요청했다면 모르지만 한가하게 난로가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렇게 불친절할 수 있을가 의아스러웠다.

모처럼 찾아 온 모교에서 한 여직원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냉대를 받고 보니 모교에 대한 인상이 차갑게 느껴지고 씁쓰레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기 직장을 이해관계로 찾아온 것도 아니고 더욱 모교를 찾아온 졸업생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직장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에 따라 心理的 好 또는 不好의 감정은 있을 수 있다고 이해를 하면서도 불쾌한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조직의 구성원 한사람의 불친절이 전체의 인상을 나쁘게 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친절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느끼게 하였다.

친절은 우리의 삶을 훈훈하게 하고 정이 넘치는 따뜻한 사회를 만든다. 인간사회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이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 친절은 상대방에게 예절을 표시하는 한 기본적인 태도이다.

친절과 예절이 없는 사회는 서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것이다.

친절을 베푼다고 손해보는 것도 아닌데 모교에서 한 여직원의 불친절이 나로 하여금 어떤 믿는 사람에게서 배신이나 당한 기분이 들게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언제나 무언 속에 따뜻이 반겨주는 불변의 석탑과는 달리 인간은 왜 이렇게도 차갑게 변해만 가고 있는지?

모교를 방문할 때의 그 즐거웠던 마음이 교문을 나설 때에는 착잡한 기분이었다.

다른 교우들은 모교를 찾아 왔다가 이런 불친절 때문에 불쾌한 기분이 되어서는 안 될텐데 생각하며 친절이 주는 소중한 의미를 다시금 음미해 보았다.

친절하고 예의 있게 상대방을 대해 주면 서로 기분 좋고 즐거운 마음이 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잊고 생활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삶에 큰 가치와 향기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점점 차갑게만 변해 가는 우리의 도심 인정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으로 서로를 돌같이 본다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너무나 삭막하지 않을 수 없다.

친절과 웃음이 있는 곳에 복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보다 친절미가 있는 인정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군다나 여성에게 있어 웃음과 친절은 영원한 美이며 직장 분위기를 밝고 명랑하게 해 주는 꽃이다.

요즘 현대 여성들은 발랄하면서도 지혜롭고 깜찍할 정도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처신을 잘 하는 여성 특유의 미덕을 발휘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여성들이 필요한 것이다.

현대 조직사회에 있어서는 조직의 논리와 욕구가 개인의 욕구보다 더욱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하겠다.

개인보다 조직이 우선하기 때문에 개인의 생활습관이나 태도는 근무직장의 관행에 합치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직장인의 자세라 할 것이다.

친절은 우리의 삶을 기쁘게 해 주는 아름다운 마음의 향기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은 상대방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친절을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살기 바빠 비뚤어진 인간이지만 웃음 있고 친절을 나누는 사랑의 이웃이 되어 무엇인가 달라지는 사회가 되어야 하겠다.

이것이 사람이 사는 인정사회이며 즐겁고 살맛 나는 사회인 것이다.

 예의 바른 친절은 자신과 사회를 명랑하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데 큰 마력을 발휘할 것이다.

작은 친절이라도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동력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양  태  영
한경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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