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타령
찬밥 타령
  • 김용덕 기자
  • 승인 2004.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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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寒食)얘기다. 한식은 말 그대로 찬밥을 먹는 날이다. 왜 찬밥을 먹는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얘기이기도 하다.
중국 진나라때 충신 개자추에 대한 얘기다. 이 얘기는 주신(主臣)관계를 논할 때 곧잘 나오곤 한다.

▶중국 진나라의 문공(文公)이 국란을 당하여 개자추 등 여러 신하를 데리고 국외로 탈출, 방랑할 때다. 문공이 배가 고파서 거의 죽게 됐을 때 개자추가 자기 넓적다리살을 베어 구워먹여 살린 일이 있었다. 국란이 끝난 후 왕위에 오른 문공은 다른 신하들에게는 녹봉과 큰 벼슬을 내렸으나 개자추 생각은 잊어버렸다.

세월이 한참 지난 뒤 문공은 그제서야 당시 자신을 살렸던 개자추를 생각해냈다.
문공은 이 개자추의 은덕을 생각하여 높은 벼슬을 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개자추는 면산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개자추를 나오게 할 목적으로 면산에 불을 질렀다. 개자추는 그러나 홀어머니와 함께 나무를 부여안고 타 죽었다.
이 소식을 접한 문공은 땅을 치며 후회했고 그를 위해 그 날만은 더운 밥을 먹지 말고 찬밥을 먹을 것을 지시했다. 이게 한식의 유래다.

▶이 얘기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충신을 몰라본 어리석은 왕과 자신을 몰라준다고 숨어 지낸 소극적인 삶에 대한 후세의 평가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어리석은 지도자가 꽤 있다. 진정 자신을 위해 일을 했던 충신을 나몰라라 내팽개치는 사례를 목도할 수 있다. 이는 선거와 관련된 부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공직사회에선 이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모든 것을 정치로 풀어가면 반드시 적이 생기기 마련이다.
당선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가 당선되면 잊어버리는, 속된 말로 ‘화장실 갈때하고 나올 때 생각이 바꿔진다’는 것과 다름아닌 일이 주변에선 많다. 지금 이런 일로 속앓이를 하는 공직자들을 보면 한식이 저절로 생각이 난다.

▶그렇다고 자신의 공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숨어 지내며 한탄하는 일은 동정만을 살 뿐이다. 동정은 가여움이다. 가여움을 통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런 저런 지원을 받는 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다.
보다 적극적인 대쉬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이로써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은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주변에서의 농간이 작용, 배제될 수 있다. 이 일로 실망, 숨어지내면 그야 말로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낙오자는 곧 패배자다. 현실에서의 패배는 삶의 이탈을 낳을 수밖에 없다. 지금 노숙자들의 삶은 새로운 한식이다. 따지고 보면 현실에서의 낙오자들이다. 이를 우리는 동정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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